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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상 최악의 졸작 캔디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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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것만큼 국가 홍보와 산업에 중요한 수단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헐리우드가 영화 한 편으로 거둬 들이는 외화가 한국 자동차 1년분 전체 수출치를 훨씬 능가하고(물론 스필버그처럼 특별한 경우, 하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미국의 경제에 영화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 하는 사실), 홍콩이라는 제주도보다 더 작은 도시가 영화 산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던 것이나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프랑스를 사람들이 연상할 때 `소피 마르소`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아르헨티나라는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를 늑대 인간 전설을 다룬 영화 `나자리노`의 나라로 인식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만큼 그 국가의 얼굴 마담같은 것이 영화지만 우리 나라는 아주 최근 들어서야 아시아 시장을 통해, 그리고 몇몇 국제 영화제를 통해 조금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암울 그 자체였다.
그 대표적인 예이자 암울했던 국내 영화계의 과거 현실을 반증하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캔디 캔디`가 아닐까 한다.

잘 알다시피 캔디는 우리에게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일본 순정 만화다.
`미즈키 교오코`라는 여류 작가와 `이가라시 유미코`라는 여류 만화 그림 작가가 의기투합해 70년대 중반 발표 된 캔디는 다른 걸 다 떠나서라도 우리 연예 문화에게 있어선 모태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캔디가 발표 된지 벌써 30년이나 되었건만 우리 나라 드라마나 영화는 여전히 캔디의 여러 면을 차용 중이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구박에 시달리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여인`, `그녀를 구원하러 나타난 백마 탄 왕자님`, `용모도 보잘 것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그녀의 주위엔 항상 멋 지고 착하고 돈 많은 남자들이 끊이질 않는다`, `알고보니 귀족 가문의 딸이었다는 식의 출생의 비밀`, `결국 착하고 싹싹했던 그녀는 왕자같은 남자와 결혼한다`
지금도 너무 자주 사용 되지 않나 싶다.


그러니 이 만화 캔디 하나가 다른 건 몰라도 국민들의 최고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인 드라마를 사실상 손에 움켜 쥐고 있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캔디가 예전에 국내에서 영화로 제작 된 적이 있음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태여난 해인 1981년, `캔디 캔디`라는 제목으로 한 영화가 제작, 개봉 되었다.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최선아`가 주인공 캔디 역이었고 `호랑이 선생님`의 터줏대감이었던 `엄효정`이 캔디의 어린 시절 즉 `포니의 동산 시절`을 연기 했었다.
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는 직접 보지 못 하고(너무 어릴 때라) 80년대 후반 텔레비젼에서 자주 방영 해 주는 걸 한 두어 번 보았는데 처음 보고서 너무나 경악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안소니`나 `테리우스` 매니아들이 보면 게거품 물 수준의 남자 배우에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의 캔디나 이라이자의 드레스에, 촌스럽다 못 해 경악스럽기 그지 없는 그랑프리 헤어 가발 등...
(** 여기서 그랑프리 헤어란?
옛 날 서양 귀족 여인들처럼 긴 머리를 가닥가닥 꽈배기처럼 돌돌 말아놓은 스타일을 말 함.
아주 쉬운 예가 캔디 만화의 이라이자 머리와 외화 시리즈 `초원의 집`에서 주인공 로라를 괴롭히던 금발 머리의 상점집 주인 딸의 헤어 스타일을 연상하면 됨.

안소니나 테리우스 역을 맡았던 그 배우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작은 키에 둥글한 체격, 전형적인 옛 날 아저씨 스타일의 머리와 얼굴형, 돌출한 입매, 여드름투성이 피부가 정말 경악스러웠음.
내가 그렇게 그리고 뭇소녀들이 그렇게나 열광했던 두 캐릭터를 대책 없이 망가뜨리다니...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들장미 소녀 제니`에서 스칼렛 오하라와 제니가 그랬던 것처럼 커텐을 떼어다 재봉틀로 만든 듯한 드레스와 아동 인형극 가발같은 주인공들의 헤어 스타일은 지금 유행하는 말로 `대략 난감` 그 자체. 하여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 됨)

그런 탓인지 영화는 흥행과 작품성에서(솔직히 작품성이라는 말조차 아까움) 전혀 호응을 얻지 못 했고 영화 속 주인공들 중 최선아를 제외하고는 이후 그 누구도 영화나 방송 등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 캔디에 대해 누군가는 `호랑이 선생님에 나오는 배우들이 모여라 꿈동산 수준의 분장을 하고 대걸레와 분간이 안 되는 어처구니 없는 가발을 쓰고 등장 해 캔디와 안소니 등에 대한 환상을 망가뜨린 개허접 삼류 졸작이다`라는 최악의 평을 늘어 놓았을 정도.
이 영화에서 건질만한 것을 굳이 찾는다면 지금은 은퇴한 최선아의 19세 시절 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뿐!
내 기억에 그녀는 77년 미스 코리아 진 출신 방송인 `김성희`, 여배우 `정윤희`, 10대 시절 `이상아`와 함께 어린 시절 내 눈에 가장 예뻐 보였던 여자로 남아 있다.

지금 난데없이 이 영화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영화가 과거 한국 영화 산업의 전형을 교과서처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쓰잘데기 없는 일본 문화 베끼기와(당시 캔디가 이미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타서 큰 인기를 모은데다 일본 만화임을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아는 처지였기에 극장 개봉시 원작을 `미즈키 교오코`라고 했음. 하지만 저작료는 시절이 시절인만큼 당연히 `싹!`) 여유 없는 제작 기간(당시 영화는 제각 기간이 길어야 3,4개월), 최소한의 비용 투자, 과장 된 연기(성우가 더빙 하기에 배우들의 동작이 보기 민망 할 정도로 아주 컸음) 등 엉성한 시스템이 말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캔디는 한국 영화사상 유례없는 졸작이자 한 편으로는 시대를 잘 못 만난 희생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이 영화 캔디를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런 시절은 한국의 문화나 산업 발전을 위해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는 시절`임을.
(설마 다시 올리는 없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조용히 개봉 되어 캔디팬들의 캔디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과 몇몇 신인 배우들만 말아 먹은 채 사라졌던 영화 캔디는 어떤 의미에선 반드시 상기되어야 할 것 중 하나이고 다른 의미에선 반드시 잊혀져야 할 것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주근깨 같은 게 있으면 어때?
납작코이긴 하지만 마음에 들고
말괄량이라서 장난 치는 게 너무 좋아!
달리기, 뜀박질도 너무 좋고
나는 나는 나는 캔디

외톨이로 있으면 아주 조금 쓸쓸하지만
그럴 땐 이렇게 해 보는 거야 거울을 보면서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
울보 같은 건 이젠 안녕이야
캔디 캔디`>

-캔디 캔디의 주제가 원곡(한국어 번안 주제곡은 리듬을 늘어 뜨려서 약간 청승맞은 분위기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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