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연예,문화

코코샤넬 이야기

포항홈페이지제작 미래제작소

지난 번에 연재했던 남성 디자이너와 남성 스타들의 세계를 얘기하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들이 있다. 내게 특별한 영향과 감동을 주었고, 세계와 국내 패션계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으며 영원한 패션의 대모들인 `샤넬`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디자이너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패션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마치 덧셈, 뺄셈도 알기 전에 구구단부터 익히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다보면 향수의 영원불멸의 클래식 `샤넬 No 5`와 `오드리 헵번`의 탄생에 얽힌 비화와 이들의 진정한 매력도 느낄 수 있다.

흔히 코코라는 애칭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가브리엘 샤넬은 단순히 패션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들의 생활상과 권리의 역사,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세계 패션의 영원한 어머니 샤넬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함과는 달리 꽤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열 살 때 병으로 어머니를 잃었는데 행상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가브리엘과 여동생 두 자매를 수녀원에 딸려 있는 고아원에 맡기고는 사라져 두 번 다시 두 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아원에서 하나뿐인 여동생마저 병으로 잃게 된 소녀 샤넬은 그야말로 외톨이가 된 채 세상에 대한 원망을 하며 지내던 중 열 아홉살이 되었을 때 숙모 애드리엔느에게 입양되게 되었다.
때마침 애드리엔느는 양장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운명을 이끌게 되었다.
숙모의 양장점 점원으로 일하며 바느질에 매달렸고, 그러던 중 숙모가 사업차 아르헨티나로 떠나며 그녀에게 모자점 운영을 지원했는데 이 모자점은 샤넬의 특출난 재능이 두드러져 샤넬에게 큰 성공을 가져 왔다.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샤넬이라는 패션 브랜드의 출발점이 된 셈...
그런 그녀가 모자를 넘어서 이른바 토털 패션에 뛰어든 계기가 남다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한 사건이 터지자(잘 알다시피 제 1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건) 샤넬은 재빠르게 정장에 뛰어들었다.
이유는 바로 사지복을 만들기 위해서...
그녀는 전쟁이 터지면 공장에서 일하기에, 또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에 편한 사지복이 대유행할 것이며 이 따뜻한 사지복은 돈버는데 최고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예감했다고 한다.
그녀의 동물적인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
누군가 그녀에게 말했단다.
``전쟁을 이용해 돈 벌 궁리를 하다니, 부당이익은 반역이야! ``
이 말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원래 전쟁 자체가 더러운 것이고, 세상 역시나 더러운 곳이다. ``

이후 그녀는 승승장구한다.
다리를 날씬하게 보이게 하는 일명 A라인 스커트를 개발해 냈고(흔히 샤넬 라인 스커트로도 불림), 오랫동안 여성들을 억압해 왔던 코르셋으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켰으며, 그 때까지만 해도 장례식장에서나 착용이 가능했던 검은 색 옷을 일상복으로 끌어내었고, 여성용 바지와 뒷꿈치가 드러나는 신발처럼 편안하고 간소한 차림새를, 또 그 때까지 상류층에게 찬밥 신세였던 싸구려 인조 진주나 목걸이를 정장에 매치시켜 액서서리를 대중화 시켰다.

`마릴린 몬로`의 잠옷이자, 숱한 에피소드를 남긴 샤넬 5번 향수의 탄생 사연은 이렇다(마릴린이 인터뷰에서 잠옷을 묻는 질문에 ``샤넬 No 5예요``라고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즉 그녀는 잠옷 대신 자신의 알몸에다 향수 몇 방울만 뿌리고 잔다는 얘기가 된다).

자신이 개발한 향수를 애인 `미시아`의 코에 갖다대며 샤넬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향기가 없는 여자에게는 미래도 없다. ``

이 얼마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절묘한 말인가?
그렇다. 향기가 없는 여자에게는 아니 향기가 없는 인간은 그 누구든 미래도 사랑도, 성공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그 특유의 향이 있다.
아기에게는 우유와 캐러멜 냄새가 나고, 사춘기 소년과 소녀에게는 은은한 땀 냄새가, 성숙한 여인에게는 암내가 나듯 인간은 향이 없다면 이미 죽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사랑스러운 여인에게는 싱그럽거나 매혹적인 향수와 샴푸 냄새가 나고, 멋진 남성에게는 자극적인 땀 냄새나 상쾌한 스킨 또는 향수 냄새가 나죠) 특히 남자든 여자든 연인에게 나는 향기는 그 얼마나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는가? 난 향기가 스킨 십과 대화 못지 않은 섹스의 중요한 코드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몸을 애무하거나 터치할 때 전해지는 향기가 상대방을 얼마나 취하게 하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난 오감으로 전부 느낄 수 있는 것만이 완전한 섹스라고 생각한다.
어느 유명 여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란 그 사람의 얼굴은 잊을지언정 그 사람의 향기는 결코 잊지 않고 언제까지나 뇌리에 간직한다. `
굳이 이 표현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만큼 향기는 인간에게 중요하다. 이 점을 샤넬은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던 듯...

위의 말을 하며 샤넬은 미시아에게 이 향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의 대답은,

``눈을 감고 있으면 모든 꽃이 만발해 있는 화원 앞에 와 있지만 막상 눈을 떠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화원의 느낌. ``

그러자 샤넬은 80종의 향료를 혼합해 어렵사리 화원의 향내를 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미시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름을 미시아 5번으로 하자! 내 이름 미시아에다가 당신의 럭키 넘버인 5번을 합산해 샤넬 No 5로. ``
샤넬 향수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그녀는 최고의 디자이너로 맹활약하던 50대 시절, 공장 직원들의 파업으로 현역에서 물러나 20년동안 자신을 갈고 닦으며 기다린 끝에 70대 나이에 재기했다.
지금 같아도 왕할머니 소리를 들을 나이인 70대에 복귀한 그녀는 오히려 이 복귀 이후 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 냈다. 남들 같으면 지쳐서라도 포기했으련만 그녀는 그 나이에 불굴의 의지로 재기했고 결국 보란 듯이 성공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샤넬하면 떠올리는 그 유명한 동백꽃 브로우찌와 C자가 교차하는 잠금 형태의 샤넬 핸드백이 이 때 나왔다고 한다.

밍크 코트, 다이아몬드와 함께 전 세계 여자들의 영원한 꿈이자 동경인 `샤넬`.
그녀는 단순한 디자이너의 차원을 넘어서며 `드골`이 말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프랑스가 남긴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집이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 세계를 떠돌며 패션 쇼를 여느라 호텔을 전전했던 탓에 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 제대로 정착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일에 대한 애정이 무척 강해 죽기 직전까지도 호텔방에서 스케치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흔히들 말한다. 샤넬은 코르셋으로부터 여성들을 탈출시켰지만 그녀 스스로는 강한 고독 속에 갇힌 안개 같은 삶을 살다 갔다고...
불우한 어린 시절과 외로움을 이겨냈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그 누구보다도 능동적이며 개척적인 삶을 살았고, 그 어떤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사랑을 갈구했지만 평범한 여인의 삶 또한 거부했던 그녀의 87년의 삶, 진정 그 누구보다도 굵고 길게 불굴의 의지로 살다 간 위대한 예술인으로서의 87년간의 삶이다.




포항홈페이지제작 미래제작소
포항홈페이지제작 미래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