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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아이돌의 우상이자 외모와 실력을 겸비했던 나카모리 아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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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일본에는 니혼 방송사가 주최하는 스타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신인가수 등용문 프로그램으로 야마구치 모모에라는 불멸의 스타를 탄생시키기도 했으며 마치 지금의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그램처럼 가수 지망생들이 각자 자신있는 곡을 들고나와 카메라와 심사위원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 평가와 선택을 받는 방식.

이 프로그램에 어느 날 방년 16세 된 한 가녀린 소녀가 출연해 심사를 받았다.
이 프로그램이 탄생시킨 최고의 스타 모모에의 힛트곡 중 하나인 몽선안내인을 들고나와 부르며.

<`달빛이 흐르는 밤바다에서 두 사람을 태운 곤돌라가 파도도 일으키지 않으며 천천히 미끄러져 갑니다
아침의 기운이 동쪽 하늘을 아련하게 마치 와인을 엎지른듯한 빛깔로 물들여가는 그런,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서로를 마주보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 있다는 감격에 할 말을 잃은 새벽녘 전입니다 할 말을 잃은 새벽녘 전입니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77년 힛트가요이자 아키나가 데뷔무대에서 불렀던 몽선안내인 중에서-



아름다운 연가의 명곡인 이 곡을 소녀는 통통한 젖살과 덧니, 그리고 작은 체구로 누가 봐도 애티가 가시지 않은 어린 몸임에도 불구하고 성인여성을 뺨 치는 성숙하고 안정된 창법으로 불러 당시 심사위원들을 놀래켰고 그 결과 역대 출연자 중 최고 점수로 합격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당시 소녀를 지켜보던 이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 소녀가 훗날 일본 가요계를 찬란하게 빛 낼 대스타가 될 것임을 그리고 아키나 신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거물 여가수가 될 거라는 사실을 또 일본 열도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거대한 스캔들의 여주인공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소녀가 바로 와타나베 하마코, 미소라 히바리, 미야코 하루미, 야마구치 모모에의 계보를 잇는 일본의 대여가수 나카모리 아키나이다.
이 날 그녀는 자신의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고자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이 가수가 되길 바랬던 엄마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출연했으며 집안형편이 좋지 못 해 무대의상을 비용을 들여 따로 준비할 수 없어 엄마의 원피스를 줄여 출연했다고 훗날 밝히기도 했다.

누가 봐도 예쁜 용모, 게다가 이 미모를 능가하는 탁월한 가창력은 그녀를 가수로 만들기에 충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로우 모션이라는 경쾌한 발라드를 타이틀곡으로 들고나와 정식가수의 첫스타트를 끊게 된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못 했던 탓에 그녀의 데뷔곡 슬로우 모션은 큰 빛을 보지 못 했고 훗날 이 곡은 아키나의 저주받은 명곡으로 일컬어지게 된다.
지금 들어도 맛이 분명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경쾌한 멜로디, 그리고 오래 전 해변가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서글프면서도 아련한 가사.

<`모래 위의 섬세한 발걸음들 그저 혼자 놀기
뒤돌아보니 멀리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물가를 걸어오고 있네
갑자기 등을 통해 사랑의 예감이 달콤하게 흘렀지~

만남은 슬로우 모션 사랑의 경치가 완만하구나
만남은 슬로우 모션 사랑의 속도도 완만하게
모래 위 그림 그리기 지금 당신과 함께~`>

-슬로우 모션 중에서, 이 곡은 훗날 여러차례 리메이크 되었음-

그 뒤 후속곡으로 한 17세 소녀의 자아를 우렁차고 경쾌하게 묘사한 곡 소녀 A를 밀게 되는데(이 곡의 제목 A는 아키나의 이니셜에서 따 왔으며 아키나 당시의 실제나이도 17세였음, 그러니 그녀의 자작곡이나 마찬가지) 독특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중독성 강한 분위기로 인해 금세 정상을 차지하며 처음으로 아키나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그리고 연달아 발표한 세컨드 러브 즉 두 번째 사랑도 대힛트를 기록하며 순풍에 돛을 단듯 인기몰이 행진을 했으며 차츰 아키나 시대를 열어가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세컨드 러브가 먼저이자 아키나 최초의 힛트곡이라고 하는데 사실 소녀 A가 먼저임)


<`눈을 치켜뜨며 훔쳐보고 있죠 눈부신 푸른 그대의 시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입술을 적시며 계기 정도는 내가 만들어 주겠어요 보통의 17살이죠~

속 상해요! 속 상해요! 나는 나에요 관계 없어요 특별하지 않아요 어디에도 있으니까
나? 소녀 A~`>

-소녀 A 중에서, 아키나 최초의 힛트곡-


그 뒤 금구, 1/2의 신화, 십계, 북녘비행 등 그녀 나카모리 아키나는 발표하는 곡들마다 모조리 정상을 차지하는 대인기를 구사했고 그로 인해 그녀를 견제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그녀가 신보를 발표할 때마다 앨범발매나 발표 시기를 미루는 가수들이 줄줄이 늘어났던 것.
아무리 곡을 발표해도 아키나가 항상 1위를 차지하니까...
그 정도로 그녀의 인기는 막강했다.
(역대 일본가요 인기순위 차트기록을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데뷔했던 82년부터 88년 무렵까지 모든 정상순위에 그녀의 곡이 거의 도배되다시피 되어 있다)
이제 서서히 그녀의 소원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어릴 때 우상이었다는 야마구치 모모에와 같은 위치가 된데다 어려웠던 집안까지 일으키게 되었으니까.

그러던 차에 그녀에게 잊지 못 할 시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1985년과 1986년, 아키나가 막 성인식을 치루던 이 시기에 그녀는 그 누구도 그녀의 자리를 넘 볼 수 없는 위치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1985년 발표한 미 아모레로 어지간한 일본의 인기가수들조차 한 번 타기 힘 들다는 일본 레코드 대상 그랑프리를 최연소로 수상 했으며 이듬 해인 86년에는 디자이어로 또 수상해 2년 연속 수상의 대기록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 레코드 대상 2년 연속 수상은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유례가 없었다.
그녀 최초의 기록이며 10여년이나 지나 하마자키 아유미가 등장해 3년 연속 수상하면서 비로소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

더이상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슈퍼 인기, 그리고 그녀만의 매력인 세 가지 겸비.
(미모와 실력, 그리고 카리스마까지, 알다시피 대부분 그렇지 않나?
미모가 되는 가수는 대부분 실력이 딸리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실력이 뛰어난 경우는 미모가 딸리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이 중 단 한 가지도 갖추지 못 한 이들도 알고보면 적지 않은 게 현실.
하지만 그녀는 얼굴도 예뻤고- 데뷔 초기 그녀는 손예진과 김지미와 송윤아, 조용원 데뷔 시절을 연상시키는 아주 예쁜 얼굴을 지녔었음, 아무래도 한국계라 한국 여자 연예인들을 많이 닮은 분위기를 지닌 듯- 가창력도 탁월했고 게다가 어릴 때 무용을 전공했던 탓인지 안무 실력 또한 탁월, 게다가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까지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가희-가희는 그녀의 별명)

하지만 이 점 때문에 사람들의 시기를 유독 많이 받았던 탓일까?
슬슬 큰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최대 힛트곡인 난파선을 발표하며 최정상에 완전히 안착해 있던 시기, 그녀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토록 믿었던 남자의 변심과 부모와 가정의 불화.
그녀가 데뷔하던 시절부터 동료가수로 친하게 지내다 어느 순간 연인이 되어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었던 당대 인기 남자가수 곤도 마사히코.

그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멀리하려 들어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긴데다 때마침 그녀가 모든 걸 의지했던 그녀의 모친이 큰 병환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으며 설사가상이라고 부모는 결국 오랜 다툼 끝에 이혼해 버렸고 게다가 인기가수인 그녀를 서로 차지하려고 두 부부가 싸움까지 벌인 것(이 건 맥컬린 컬킨 부모와 비슷한 케이스).
그런 탓에 그녀는 이 무렵 출연한 방송에서 자주 우울하거나 허공을 응시하거나 넋 나간 표정을 지어 주변사람들의 호기심과 근심을 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웃어 넘기거나 친구들과 놀며 풀겠지만 유난히 외곬수 기질에 소극적인 면이 강했던 그녀로서는 그저 속으로만 삭힐 수 밖에.
하지만 이런 어두운 사정과는 정반대로 그녀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그 와중에 탄생된 그녀 최고의 명곡 난파선은 그래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곡에 대한 묘한 후문이 있다.
가정불화와 연인인 곤도와의 냉전으로 지친 그녀는 어느 날 그녀의 대기실에서 엎드린 채 통곡하며 자신의 서러운 처지를 비관했다고 한다.
그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한 여류 작곡가 겸 여가수가 그녀를 달래고 위로하며 자신이 작곡한 곡을 위로선물로 주게 되었는데 그 곡이 바로 난파선이라는 것.

실연당한 후의 비참하고 쓸쓸한 심정을 침몰하는 난파선에 비유한 곡으로 지금도 일본 가요사의 명곡으로 손꼽힌다.


<`겨우 그 딴 사랑 따위는 그냥 잊어버리는 게 좋아
울고 싶을만큼 울어 버리고 나면 눈 앞에 또다른 사랑이 찾아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강인함을 말해 보여 주는 이유는 당신을 잊기 위해서지
너무 외로워 부서질 것만 같아 난 사랑의 난파선~
부러진 날개를 펼친 채로 당신의 위에서 떨어지고 싶었지~
바보처럼 웃었지만 당신을 쫓아가 안고 싶었지~
겨우 연인을 잃은 것만으로 내 모든 것이 사라졌어
오직 나 혼자 뿐 아무도 없어 난 사랑의 난파선~`>

-난파선 중에서, 이 곡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그 해 3년 연속 레코드 대상 수상까지 유력했으나 그녀의 소속사와 경쟁관계인 한 굴지의 연예기획사의 훼방과 그녀가 남친 곤도를 배려해 결국 그 해 별 인기를 끌지 못 했던 곤도가 대상 수상-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가수는 자기 노래대로 인생을 산다고 그녀가 이 곡의 실제주인공이 될 줄이야!
그로부터 2년 뒤 그녀는 남친 곤도로부터 실연을 당한데다 가정불화가 최고에 이르러 결국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선택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게 된다.
잘만 하면 테레사 텡과 같은 범아시아 즉 아시아 전체를 뒤흔들 여자스타로 부상할뻔 했던 그녀를 한 순간에 추락 시켜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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