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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세계최고 명배우들- 해외여배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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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로렌과 슈나이더라? 도대체 얼마만에 듣는 반가운 이름인지...
내가 참 좋아했던 여배우들인데 유난히 고전 명배우들에게 관심 많은지라 한 번 써 보고 싶다.
원래는 한국 여배우들 얘기부터 먼저 쓸 생각이었는데 생각난 김에 해외편부터.
그저 재미로 쓰는 글이니 옛 스타나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잘 읽어 주시길.



<헐리우드 편>


1. 그레타 가르보

영화 사전이나 세계 명배우 사전에 항상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이 가르보.
헐리우드 최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30년대에 등장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던 전설적인 인기를 누리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인물로 지금도 곧잘 인류에 회자되는 중.
신비하고 우아한 미모, 육체파 여배우의 원조라 일컬어지는 큰 키와 늘씬한 몸매, 늘 알 수 없는 심연의 연기, 환상적인 카메라발, 당시 유행을 이끌던 패션법은 지금의 그 어떤 여배우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불우한 유년 시절을 이겨내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국제적인 여배우로 우뚝선 그녀의 삶이야말로 영원한 전설로 남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녀는 스톡홀름 빈민가에서 알콜 중독의 싸구려 노동자였던 부친과 세탁부였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백화점 점원, 이발소 종업원- 손님들에게 면도거품 칠해주던 일을 했음- 등을 전전하다 배우가 되었는데 그녀의 우아하고 도도한 여왕 이미지와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 과거)

대표작- 첫토키 영화로 비스키란 말을 유행시키며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최초로 후보로 올랐던 안나 크리스티(비스키란 위스키를 그녀 식으로 발음한 것, 스웨덴 출신인 그녀는 정확한 영어를 구사 못 했다고 한다), 비련의 여인 안나 카레리나, 전설의 여간첩 역 마타하리, 서글픈 발레리나를 연기했던 그랜드 호텔, 그녀 스스로 최고의 명연기를 보여 주었다는 춘희의 마가렛, 최초로 코미디에 도전했던 니노치카.


2. 셜리 템플

천재 아역 연기자 국민 여동생 배우의 원조가 바로 이 템플.
웃을 때 쏙쏙 들어가는 보조개와 양배추 머리, 통통한 볼의 귀여운 외모와 깜찍함으로 가장 어린 나이에 박스 오피스에 오른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대공황 시절 활약했던 이 템플의 밝고 귀여운 매력은 당시 시름에 젖은 미국 국민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을 제공했다고 한다.
당시 헐리우드는 성인 여배우로는 그레타 가르보가 아역 여배우로는 이 템플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어찌나 템플의 인기가 높고 잘 나갔는지 빅터 플레밍의 명작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을 이 템플이 맡을 예정이었지만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 결국 기권하고 무명의 주디 갈란드가 대타로 역을 맡았을 정도.

(당시 주디 갈란드의 나이는 17세로 8세 정도의 도로시 역을 맡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지만 156센티의 작은 키에 동안인 얼굴이라 배역을 따 내어 셜리와 함께 최고 아이돌 배우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음.
이 오즈의 마법사는 지금도 자주 방영 되고 있는데 39년에 제작된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촬영기술이나 대사법이 탁월함)

대표작- 최고의 세라를 연기했던 소공녀, 가련한 고아 소녀를 연기했던 애니, 이보다 더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소녀배우 또 나올 수 있을까?
이 셜리는 톰과 제리에도 소개된 적이 있음.

  
3. 마를렌 디트리히

스웨덴이 낳은 명여배우가 가르보라면 독일이 낳은 명여배우는 단연 디트리히.
사상 최고의 각선미라 불리우는 다리의 아름다움과 허스키하고 매혹적인 목소리, 퇴폐적이면서도 화려한 미모로 1차 세계 대전 당시 디트리히는 살아있는 로렐라이의 요정으로 칭송 받으며 참전군인들이 가장 좋아해 그들의 품 안이나 침상에 이 디트리히 사진이 꼭 있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참고로 2차 세계 대전 당시는 베티 그레이블이라고 백만 달러의 각선미로 유명했던 블론드 여배우가 참전군인들의 핀업걸 역할을 했음.
이 그레이블은 마릴린 몬로의 영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에 출연했음)

대표작- 그 전설의 각선미를 선보여준 푸른 천사, 영화사상 최초로 여성이 바지 입은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게리 쿠퍼와 공연한 모로코, 요염하지만 가련한 여인 역을 선 보였던 정부 마농 등.


4. 헤디 라마

아마 재색을 겸비한 여배우의 대표주자가 이 라마가 아닐까 한다.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마녀라는 칭송을 들었으며 영화사상 최초의 누드신을 선보인 여배우, 그리고 시대를 너무 앞서가 80년대에나 상용화 될 수 있었던 기술을 40년대에 개발해낸 천재 과학자.
놀랍게도 이 모두를 이 여인이 전부 창조해냈다면 믿겨지는가?

1914년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녀는(그러니까 비비안 리보다 1살 아래) 19세이던 1933년 체코에서 제작된 봄의 조율이라는 작품을 통해(제작국과 영화제목은 분명치 않음, 오래 전 들은거라) 영화사상 최초로 전라를 선보였으며 그 화려한 미모와 몸매를 바탕으로 헐리우드에 입성해 인기배우가 된다.

게다가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지금 휴대폰에 흔히 사용되는 CDMA 주파수도약기술을 개발해내는 천재성을 발휘하는데 문제는 이 기술이 시대를 너무 앞서가 당시 인정받지 못 하다가 80년대에 들어서야 대중화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재색을 제대로 겸비한 여인.

내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예쁜 백인 여배우는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다.
활동 당시 사진이나 필름을 보면 알겠지만 어떻게 그 옛 날 여배우 중 지금 기준으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현대적이면서도 여신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 있을까란 의문이 들 정도.
(알다시피 그 시절 최고미인이라 해도 나중에 불과 10여년 뒤에만 다시 봐도 촌스럽잖아? 그런데 이 라마는 반 세기 이상 지난 지금 기준으로도 분위기가 모던한 편)
이렇다 할 성형기술도 없던 그 시절에.
하여간 예쁘면 팔자가 세다는 공식을 입증하듯 이 지성을 겸비한 미인은 6번이나 결혼하는 등 여자로서의 삶은 굴곡이 많았고 비버리힐즈의 한 저택에 홀로 칩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 영화사상 가장 많은 의상비가 들었다는 삼손과 데릴라의 데릴라 역이 바로 이 라마.
삼손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아름다운 악녀 역에 그녀만한 적합자가 또 있을까?
문제는 얼굴과 몸매가 너무 탁월하다보니 연기력을 입증할만한 배역을 맡지 못 해 그저 뛰어난 미인배우로만 평가받아 왔기에 대표작이 거의 없지만 대신 이국적이고 여신같은 미인으로 인기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5.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타 가르보와 함께 스웨덴이 낳은 불후의 명배우로 가르보와는 상반된 매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가르보가 가공되고 인조적인 매력으로 입지를 굳힌 반면 버그먼은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명배우 자리를 지켰고 가르보가 36세 나이에 은퇴해 은막 뒤로 사라진 반면 버그먼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배우로서 활동했다.
원래 데이비드 오 셀즈닉이 비비안 리 이전 이 버그먼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가능성을 점쳐 두었는데(당시 버그먼은 막 헐리우드로 입성했음) 버그먼이 자신은 외국에서 갓 온 처지라 미국 남부 여인 역에 적합치 않다고 거절한 건 유명한 일화.

그 대신 그녀는 별리라는 작품으로 헐리우드에 첫신호탄을 쏘았고 셀즈닉의 작품에 다수 출연했다.
그녀의 딸 이사벨라 롯셀리니는 우리에게 랑콤 화장품 모델과 영화 백야로 친숙하며 두 번째 남편 로베르트 롯셀리니와의 사랑은 지금도 세기의 사랑으로 전인류에 회자되고 있다.

(그녀가 사활을 걸었던 영화 잔다르크가 실패로 돌아가 실의에 빠졌을 무렵 우연히 접한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 전화의 저쪽과 무방비 도시를 감명깊게 봤던 그녀는 이 영화들의 감독 롯셀리니에게 연애편지를 띄웠고 결국 결혼에 골인)

대표작- 지금도 멜러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험브리 보가트와 공연한 카사블랑카, 명키스 장면으로 기억되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처음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겨 주었던 가스등(게이 감독으로 알려진 조지 쿠커의 영화로 뛰어난 심리연출이 돋보이는 서스펜스물, 조지 쿠커는 그레타 가르보, 로버트 테일러의 춘희를 연출하기도 했으며 원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출하려다 불화가 생겨 빅터 플레밍으로 교체된 일화가 있음), 두 번째 오스카상을 수상했던 아나스타샤에서의 비련의 러시아 황녀(국내 개봉 제목이 추상인가 그랬음),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준 그녀의 말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아마 이 영화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고 있음)과 가을 소나타.

8월이 빚어서 8월이 거두어간 신화가 바로 버그먼!
(그녀는 1915년 8월 29일 스톡홀름 태생으로 묘하게도 같은 날 그러니까 67세 생일파티를 보낸 82년 8월 29일 밤 세상을 하직했음, 그야말로 죽음마저 드라마틱했던 인물)



6. 비비안 리

뭐 이 여배우는 별도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인도 다질링 태생으로(영국인인 그녀는 당시 영국 식민지인 인도에 거주하던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나 그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 편으로 일약 세기의 연인, 세기의 미녀로 떠오른 배우.
그녀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몇 가지.

1. 비비안 리 허리 사이즈는 정말 18인치?
이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아마 21,22 정도가 아닐까 한다. 18인치로 어떻게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더구나 그녀는 영화 출연 당시 유부녀였다 엄연히 아이까지 낳은.
아무리 타고난 몸매라 해도 아이까지 낳은 여자가 18인치 허리를 유지한다는 건 좀 무리.
참고로 헐리우드에서 가장 가는 허리 사이즈는 오드리 헵번과 리즈 테일러.
헵번은 20.5인치(죽을 때까지 이 사이즈였다고 함, 대단하지?), 20대 초반 시절 리즈는 21인치로 알려져 있음.

2. 스칼렛은 유부녀?
이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로 리는 바람과... 출연 당시 이미 은행가인 남편이 있었고(그녀가 19세이던 33년 결혼해 이미 6세나 된 딸 스잔을 두고 있었음) 이 첫 남편과는 40년 그러니까 리가 애수에 출연할 무렵 이혼하고 그녀의 영원한 연인 로렌스 올리비에와 재혼했음.

3. 로버트 테일러는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남자배우
영화 애수를 감명깊게 본 사람은 둘이 너무 잘 어울려 보였겠지만(극 중 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 커플) 사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던 배우가 바로 테일러였다.
원래 이 역은-즉 그녀와 극 중에서 사랑에 빠지는 대령 역- 그녀가 올리비에가 되길 원했지만 무산되는 바람에 애꿎은 테일러만 비비안에게 미운 털이 박혔음. 그만큼 비비안은 올리비에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가 39년 출연한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 역도 그녀가 맡고 싶어했지만 멀르 오베론이라는 영국 여배우가 대신 역을 맡았음.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그 못지 않게 연기력과 카리스마도 특출나고 사랑에도 불꽃처럼 열정적이었던 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여배우가 이 비비안 리.
요즘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이 리만큼 자기 색깔과 배우 색채가 강렬하지 못 한 것 같다.

대표작- 로렌스 올리비에와 최초공연한 36년작 영국을 휩쓴 화재, 설명이 필요없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차기작인 불멸의 러브스토리물 애수, 그녀의 출연작 중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해밀턴 부인(이 영화는 리가 애수 바로 다음에 출연한 작품으로 영국에서 실존했던 사교계의 여왕인 절세미인 해밀턴 부인 역을 아주 잘 소화해 내었음, 처칠 수상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영화로도 알려져 있는데 비비안 리가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예쁘게 나와 내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 다른 여배우들과는 다르게 가련한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했던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이 영화는 리즈 테일러의 클레오파트라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음), 그레타 가르보와는 다른 애잔한 안나를 연기했던 안나 카레리나, 비비안 리 최후의 걸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 뒤보아(이 영화 뒤 몇 편의 작품에 더 출연했지만 성공작은 없었음),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쓸쓸한 중년여인 역을 맡았던 로마의 애수와 유작인 바보들의 배.


<비비안 리의 특기사항 몇 가지.

1. 그녀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모친 탓, 넘치는 재능과 자신감은 부친 탓?
그녀의 모친은 그녀를 낳기 전 당시 거주하던 다질링의 한 산에다 대고 빌었다고 한다.
그 산은 아이를 가진 여인이 소원을 빌면 아주 예쁜 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고 예쁜 아이를 낳고 싶었던 그녀는 아주 열심히 소원을 빌었는데 그 결과 비비안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 즉 비비안의 부친은 아주 자상한 아버지로 외동딸 리를 아주 사랑해서 소녀였던 어린 그녀를 데리고 유럽 곳곳을 돌며 견문을 넓히도록 배려해 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탁월한 연기감각은 이 때 완성된 듯한데 이래서 일단 부모를 잘 만나고 볼 일이야!
외면이건 내면이건 아이가 그냥 완성되는 게 아니지!

2. 비비안은 알고보니 연극배우?
어릴 때부터 배우를 지망했던 그녀는 연극으로 먼저 데뷔했고 20대 초반 무렵 즉 신혼주부였던 시절 출연한 연극 미덕의 가면에서 절세미인 역으로 대성공을 거두어 이 때부터 영국의 인기배우 가도를 달렸으며 그녀의 연인 올리비에도 이 때 만나 사랑을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직후 로미오와 줄리엣을 무대에 올렸는데 영화의 인기에 편승한데다 당시로서는 젊은 줄리엣이라(당시 연극에서의 줄리엣은 4,50대 중년 배우들이 주로 연기했다고 함, 리는 그에 비해 당시 26세) 대성황을 누렸다는 후문이 있음.
비비안 리가 연기한 줄리엣이라... 보고 싶다.

3. 비비안 리는 보그지 초기 표지모델?
사실이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전인 30년대 중반 보그지 표지모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비비안 리가 무명시절 표지모델을 했을 정도이니 보그지가 얼마나 오래된 잡지인지 실감이 온다.

4. 비비안 리는 묘소가 없다?
이 역시 사실.
54세 나이로 병사한 그녀는 당시 부모가 살아있었고 부모의 뜻에 따라 무덤에 안치 되지 못 하고 화장되어 영국의 한 호수에 유해가 뿌려졌다.
그러니 다른 유명배우들처럼 묘소가 있어서 팬들이 꽃을 들고 추모하러 찾아갈 수 없게 되었음>




7. 캐서린 헵번

명실상부한 헐리우드 역사의 산증인이자 대모,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는 지성파 배우가 바로 이 캐서린 헵번.
토키 영화 초기에 데뷔해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최다 오스카 후보 선정, 심리학자로까지 명성을 날린 여배우인데 그레타 가르보나 마를렌 디트리히처럼 여배우 하면 화려한 미모와 몸매가 필수였던 시절 결코 예쁘지 않은 용모와 중성적인 그녀는 처음에는 2인자였지만 곧 자신만의 탁월한 재능으로 정상을 차지했다.

대표작- 작은 아씨들의 메그 역(33년 제작된 그녀의 초기 영화로 48년 제작된 자넷트 리, 리즈 테일러의 작은 아씨들보다 더 꽉 짜여진 배역으로 제작되었음, 당시 헐리우드의 유망아역들 다 출연했다고 함), 험브리 보가트와 공연한 걸작 멜러물 아프리카의 여왕, 헨리 폰다와 공연해 노년 부부의 황혼을 밀도있게 표현한 황금연못, 정감있고 따스한 할머니 역으로 등장했던 잊지 못 할 사랑(웨런 비티, 아네트 베닝 부부가 공연했던 리메이크작 잊지 못할 사랑)


이어서 다음 편에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바 가드너, 마릴린 몬로, 오드리 헵번 등의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작품들을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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