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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에게 숨겨진 놀라운 일화(`로마의 휴일` 캐스팅에 관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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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의 추모 코너를 보다가 우연히 생각 난 건데 혹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녀가 `로마의 휴일`에 출연하기까지 드라마나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사연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다시피 이 영화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 `오드리`란 존재를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 그녀는 이슬만 먹고 자란 사람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누구보다 강한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 곁에 다가 왔다.
이 역(`앤 공주`)은 원래 그녀가 아닌 `리즈 테일러`나 `진 시몬즈`가 맡을 예정이었다. 이 두 여배우를 밀어 내고 그녀가 이 역을 맡게 된 이유는...

여기서 그녀의 이력을 잠시 짚어 보자. 그래야 이유를 알 수 있다.
오드리는 1929년 5월 4일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네덜란드 남작의 딸로(한마디로 지체 높은 귀족 집안, 그래서 그 피를 이어 받은 그녀의 이미지가 고고했나 보다)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스콧틀랜드의 무역상인 남자와 재혼 했고 그 사이에서 `오드리`가 태어났다. 하지만 오드리가 열 살 때 두 사람은 결별했고, 오드리의 어머니는 외동딸 오드리를 데리고 그때까지 있던 벨기에를 떠나 고국 네덜란드로 귀향했다.
그 당시 오드리는 우연히 본 발레에 매료돼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는데(그녀의 요정 같은 이미지는 이 때 완성된 듯...) 당시 때마침 발발한 제 2차 세계 대전은 오드리의 집안에도 풍랑을 몰고 왔다. 그녀의 집안에 지하 운동을 한 사람이 있어서 여럿 희생 된데다 그녀와 식구들 역시 나치의 손길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그 덕에 한창 성장기인 그녀는 썩은 감자나 풀 등으로 끼니를 연명하거나 아예 굶는 일이 허다 했고, 결코 살이 찌지 않는 그녀 특유의 체격은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이래서 전쟁은 어린이처럼 약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무서운 것 아닐까?).
영국군이 네덜란드로 진격하면서 도피 생활은 막을 내렸지만 삶이 결코 예전 같을 수 없었다. 귀족이었던 그녀의 외가는 완전히 몰락 했고, 재산은 전화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원래 전쟁이라는 게 남기는 건 폐허와 절망 뿐 아닌가?).
어려운 상태에서 그녀는 발레에 대한 열정을 접을 수 없어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발레를 계속 하다 뜻한 바가 있어 영국으로 건너가 다시 발레 공부를 시작 했다. 보다 체계적인 수업을 받으려 했던 것...
하지만 집안이 몰락 해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탓에 여유롭게 발레를 배우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생계를 위해 나이트 클럽 댄서, 코러스 걸, 사진 모델 등을 시작 했고, 그러다 단역 배우 노릇도 했다. 자그만치 여섯 편의 영국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 했는데 전부 대사 한 마디 없는 하찮은 역할이었다. 지나가는 행인, 길거리 가판대 장수 등 지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세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결코 상상하기 어려운 오드리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그녀는 연기가 좋아 시작한 게 아니라 단지 돈 벌이를 위해 연기의 세계에 접어든 것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점차 운명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우리는 몬테카를로에서`란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그녀의 단역 배우 생활 종지부를 찍은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몬테카를로에서 로케 촬영 했는데 이 영화에서 그녀는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식장을 도망쳐 나오는 신부 역할이었다.
때마침 프랑스의 유명 작가 `코렛트` 여사가 이 영화의 촬영 장소인 호텔에 투숙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지지`가 브로드웨이에 올려지게 되었는데 여주인공을 캐스팅 하지 못해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 잠시 머리를 식히러 모나코로 왔다가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는 오드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내가 찾던 바로 그 `지지`다. ``
이 `지지`에 대해 잠시 설명 하자면 귀족 집안의 말괄량이 소녀가 여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묘사한 것으로 일종의 서양판 `명랑 소녀 성장기`라 볼 수 있는 희곡인데 뮤지컬로, 그리고 영화로 대성공을 거둔 불후의 힛트작이다. 영화가 58년 `레슬리 캐론`(`파리의 아메리카인`, `화니` 등으로 올드 팬들에게 낯익은 여배우) 주연으로 제작 되었는데 이 영화는 헐리우드 흥행 사상 50위권 안에 드는 대흥행를 기록했다.
그녀는 곧바로 코렛트 여사에게 캐스팅 제의를 받고 브로드웨이로 건너갔고, 생계를 걱정하던 미천한 단역 배우는 일약 대작의 여주인공으로 변신 했다.

이 어마어마한 행운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더 큰 행운이, 아니 별도 아닌 태양이 되는 순간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미니버 부인`,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등을 제작한 헐리우드 거장 중의 거장 `위리엄 와일러` 감독은 당시(51년 경) 새 영화를 제작하려 했다. 로마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물인데 배우 캐스팅이 안 돼 골치를 썩고 있었다. 주인공 역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캐리 그란트`를 물망에 올려 놓았는데. `엘리자베스`의 경우 그녀가 `MGM`사 전속이라 빼내기가 쉽지 않은데다(제작하려던 작품은 `파라마운트`사, 한 마디로 경쟁사 관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가 갑자기 이혼하게 되자 캐스팅은 완전히 물건너가 버렸다. 당시 `리즈`는 `닉 힐튼`과 결혼 한지 1년도 안 돼 파경 했고(그녀의 첫번째 결혼, 이름에서 느껴지듯 그녀의 첫 남편 `닉`은 유명 호텔 재벌의 아들, 그는 이혼 한지 한참 후에 권총으로 자살 했음), 그로 인해 그녀의 청순한 이미지에 금이 간 터라 고결한 공주 역에는 당연히 무리였다. 아무리 미국이지만 어찌 이혼 경력이 있는 여배우에게 순결한 여인 역을 주겠는가? 그것도 막 이혼한 처지의... 어느 자료에 따르면 그녀의 전속인 `MGM`사가 경쟁사 `파라마운트`사에 이익 주기를 거부해서 반대 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도 분명 작용 했다 한다. 그녀는 이 작품 캐스팅 과정 전, 이미 `파라마운트`사의 작품에 출연 했었는데 그 작품이 다름 아닌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돋보였고, 처음으로 여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젊은이의 양지`... 당시까지만 해도 그녀는 아이돌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경우 `알프레드 힛치콕`의 `북부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에서 열연한 키다리 미남 스타 `캐리 그란트`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그가 자신의 이미지에 안 맞다는 이유로 거부 했다(헐리우드를 대표 하는 남성 스타 였던 그는-이미지가 지금의 `조지 클루니`와 흡사함, 전형적인 미국 남성 스타일-이 외에도 자주 출연작 펑크 내기로 유명 했음).
그래서 두 사람을 캐스팅 대상에서 제외한 후 다른 배우를 물색하다 남자 주인공은 `그레고리 펙`으로 결정 지었고, 여배우는 영국 출신의 `진 시몬즈`를 물망에 올려 놓았다.
이 `시몬즈`는 `흑수선`(`데보라 카` 주연의 작품으로 그녀는 신비의 소녀 역으로 등장), `위대한 유산`(당연히 `기네스 펠트로` 주연이 아닌 40년대 연출작... 이 작품에서 최근에 `기네스`가 맡았던 역할, 그러니까 여주인공의 소녀 시절로 등장) `햄릿`(`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으로 이 영화에서 `오필리아` 역으로 열연해 18세의 나이로 `깐느 영화제` 여우 주연상 수상...) 등에서 맹활약해 이미 국제 스타로 부상한 처지였는데 고전적이고 차분한 아름다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헐리우드의 실력자 `하워드 휴즈`와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이 역시 물건너가 버렸다.

`윌리엄` 감독의 낙담이 얼마나 컸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뮤지컬을 보러 뉴욕으로 갔고, 그 때 보게 된 작품이 바로 `지지`...
그는 무대 위에서 요정 같은 자태를 빛내던 `오드리`에게 단번에 매료 되었고, 저 여인이야 말로 자신의 새 작품 여주인공에 적격임을 깨닫고는 곧바로 자신의 작품에 캐스팅 했다. 여기까지 읽고도 알겠지만 이 작품이 바로 `로마의 휴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화 `로마의 휴일`과 영원한 별, `오드리 헵번`은 이렇게 우리 곁에 다가 왔다.
이래서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팔자고, 정해진 운명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오드리`가 몬테카를로에 가지 않았고, `코렛트` 여사가 그곳에 오지 않았고, `와일러`가 브로드웨이로 가지 않았고, 두 여배우에게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난 이 일화가 생각날 때마다 운명이라던가, 인연, 행운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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