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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연예,문화

한국이 일본에서 무단도용한 것들-영화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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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가 국제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 하는 이유는 바로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가 일본 문화를 그 옛날에 개방하지 못 해 숱한 비양심 작가와 제작자를 양산 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 한류 열풍이 뜨겁다고는 하나 사실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이나 중국은 아직 개발 도상국들인지라 자신들과 다른 화려한 우리 연예인들과 드라마 속 겉모습에 동경을 느껴서일 뿐이며(우리나라가 풍족하거나 세계에 대해 열려있지 못 했던 시절, 영화 `7년만의 외출`을 보며 `아니, 어떻게 땅 밑에서 바람이 올라 와 마릴린 몬로의 치마가 바람에 날리지? 미국이란 나라는 바람이 땅 밑에서도 올라오나 보다. 거 참, 희안하네`라며 신기해 했던 것과 같은 이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던 시기에 한국은 지하철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지하철 환풍구에서 바람 올라 오는 게 신기할 수 밖에) 일본같은 경우 `겨울 연가`가 그들의 정서에 맞아(주로 아줌마들, 젊은 일본애들은 해당 드라마를 봤음에도 왜 아줌마들이 욘사마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아니러니하단다) 반짝 힛트한 것에 불과하다.

난 개인적으로 `배용준`이 무척 싫은데 그 이유는 너무 아슬아슬하고 불안 해 보이기 때문.
언제까지 겨울 연가 하나로 뽕을 뺄 셈인지...
그 옛 날 홍콩 영화와 연예인이 한국에서 국내 스타들 다 누르고 인기 폭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열기는 정말 잠시였다.
87년경 국내에 비디오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고 가정마다 보급되던 시기와 맞물려 시작된 홍콩 영화 열기는 불과 3년여만인 90년 이후 열기가 크게 감소 되었다.
(홍콩 느와르나 무협 영화들은 대부분 그 특유의 싼 맛나는 분위기 때문인지 대부분 비디오로 보지 극장에서는 잘 안 보게 됨. `천녀유혼`이나 `영웅본색`, `열혈남아`, `지존무상` 등 지금도 아주 친숙한 영화들이 극장 관객 동원은 그리 되지 않았고 대신 `DSC`나 `서진 통상` 등에서 출시된 비디오 테잎으로 큰 인기를 모아 비디오 테잎 제작사들이 큰 재미를 보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내 기억이 잘 못 되지 않았다면 89년이 홍콩 영화 열기의 최정점이었던 듯.
`주윤발`과 `왕조현`, `장국영`이 광고 하나 찍으러 방한 했고 `성룡`은 영화 `미러클` 홍보차 내한, `호혜중`은 `폴리스 우먼` 홍보차 내한, `양리칭`은 `예스마담` 촬영차 내한, 89년 연말 `공작왕`의 `글로리아 입`과 주윤발, 호혜중이 함께 방한 해 MBC `토토즐`에 출연 해 그 열기의 절정을 달렸던 기억이 남. 하여간 이처럼 89년은 홍콩 영화의 최절정이었으나 다음 해 봄 지존무상의 황금컴비 `알란탐`과 `유덕화`가 한일 연예인 친선 축구 시합으로 방한한 이후 이렇다 할 힛트작이나 인기 스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 됨.
그나마 93년 `동방불패`와 95년 `중경삼림`, 96년 `첨밀밀`이 반짝 힛트친 정도>
이 홍콩 영화들처럼 지금의 한류 열풍은 호흡이 상당히 약하다고 해석 되는데 앞으로 어찌 될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하여간 한국 대중 문화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부분 일본 문화를 무단도용 했었다.
표절과 도용이라.
이 표절과 도용은 한 개인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 한 시기에 적당히 하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고 멈추지 않는다면 진전과 발전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한 국가의 경제와 미래를 짊어질 대중 문화에서 이런다면 양적, 질적 발전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대중 문화 표절 사례들을 짚어 보면.

1. 영화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초힛트 영화 `맨발의 청춘`은 사실 일본 청춘 영화 `진흙탕 속의 순정`을 거의 그대로 본 뜬 것으로 인물 설정과 촬영법은 물론 그 유명한 참새 시리즈까지 그대로 나온다.
(`포수가 빵하고 총을 쐈는데 참새가 몇 마리 남았게?` 하는 이 친숙한 참새 유머 시리즈가 우리 것이 아닌 일본 유머가 한국으로 전해진 것임을 아는 사람은 얼마 안 될듯)
하여간 그 옛 날 한국 영화의 전성기 시절에도 일본 영화 표절은 있었고 80년대 들어서는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미리마리우리두리`, `황진이`, `장남`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대 인기 배우였던 `김진아` 주연으로 속편까지 제작 되었던 영화 수렁에서...은 전개나 촬영법, 등장 인물 스타일 등이 완전히 일본적이며 `유지인`, `강수연`, `최민희`, `하희라` 주연의 미리마리우리두리는 `아태 영화제`에 소개 되기도 했던 일본 영화 `네 자매 이야기`를 완전히 본 뜬 것이고 `배창호` 감독이 국내 최초로 `롱 테이크` 촬영 기법을 도입했고 `장미희`가 오랜만에 국내에 귀국 해 야심만만하게 임한 황진이는 딱히 표절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대표 거장 감독 `미조구치 겐지`의 게이샤 영화인 `서학일대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배창호 감독은 그 뒤 `안성기`, `황신혜` 주연의 `꿈`에서도 일본적인 색채를 물씬 풍기는 촬영법과 구도를 선 보였다.
그리고 `황정순`, `신성일`, `태현실` 주연의 영화 장남은 `회색의 황혼`이라는 작품과 인물 설정과 테마가 여러 부분 일치 해 논란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90년대 들어서도 계속 되었는데 `김규리` 주연의 `산전수전`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영화는 97년 제작된 일본 영화 `비밀의 화원`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베꼈는데 당시 막 일기 시작하던 인터넷을 통해 표절 시비가 일어나자 당황한 제작사가 황급히 비밀의 화원 저작권을 구입 해 처음부터 저작료를 지불하고 제작한 것처럼 술수를 썼다.

하긴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 연극이 되었고 어른들이 한국의 전통극으로 알고 있는 그 유명한 ``김중배의 다이아가 그렇게도`` 어쩌고 하는 `이수일과 심순애`가 사실은 `오자키`의 일본 소설 `금색야차`를 차용한 것이니 한국 영화나 연극, 소설의 일본 표절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듯 싶다.


2. 드라마

드라마는 너무 많아 딱 세 가지만 예로 들면 `간난이`와 `질투`, `청춘`이 있다.
전쟁 고아 남매의 힘 겨운 삶을 다룬 간난이는 83년 MBC를 통해 방영 되어 대인기를 모았었는데 주인공 캐릭터나 주변 인물들이 일본 소설 `오싱`과 흡사한 점이 많다.
이 작품은 내가 너무 어릴 때 보아서 어렴풋이 기억 하기에(초등학교 입학 전에 보았음) 딱히 표절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두 작품을 돌이켜 보면 한 가난한 집 소녀의 힘겨운 더부살이와 인생역정을 다룬 오싱에서 간난이가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비슷한 포멧의 간난이와는 달리 질투와 청춘은 완전 표절작이라 할 수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막 데뷔 해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던 1992년 봄,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최진실`, `최수종`이 주연한 질투는 대단한 시청률과 함께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 질투는 사실 정확히 1년 전인 1991년 일본 후지 방송사가 제작한 `도쿄 러브 스토리`를 사실상 표절한 작품이다.
`스즈게 호나미`라는 수퍼급 신인 여스타를 발굴한 도쿄...와 질투는 주인공들의 캐릭터, 주변 인물 설정, 스토리가 아주 흡사하다.

이 질투는 사실 지금같은 인터넷 시대에 나왔다면 바로 경고 먹고 잘리고도 남을만한 것이었지만 당시 시점이 일본 문화 비개방 상태이고 열린 사회가 아니었기에 표절 시비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일본 드라마를 표절한 `장동건`, `황수정` 주연의 `청춘`은 본격적인 PC 통신 시절에 방영 되어 제작진은 경고 먹고 드라마는 조기 종영되는 불운(?)을 맞았다.
시대 파악을 못 한 제작진 덕분에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스타 장동건은 이 드라마로 인해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이 외에도 8,90년대 제작 된 드라마들 중 일본 드라마 표절 시비로 논란이 되어 얼렁뚱땅 조용히 조기종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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