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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실제로 첫만난 순간의 사연...(그 날 주인공들은 전부 이 세상에 없다)

포항홈페이지제작 미래제작소

 

이야기 이해를 돕기 위해 국도극장 전성기 시절 전경 모음을 찾아 올려봅니다

이야기 전개를 편하게 하기 위해 존칭은 생략하니 이 점 양해 바라며 사연이 길어 글도 자연 무척 길어질 것이니 이 점도 양해 부탁 드립니다.


최근 일이 있어 아주 오랜만에 난 을지로 3가를 지나가게 되었다.
근처를 지나던 중 난 무의식 중에 국도극장이란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이 국도극장은 지금은 폐관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과거 서울에서 손꼽히던 대개봉관이었고 그 곳을 지나던 중 이 극장에 관한 추억이 문득 떠올라 참으로 오랜만에 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랜만에 가는 곳이다보니 위치가 쉽게 생각나지 않았고 그래서 을지로 3가 역 앞에 있는 파출소에 들러 혹시 국도극장 있던 자리가 어디냐고 길을 물었더니 거기 나이 지긋해 보이는 분께서 빙긋 웃으며 길을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이 분 하시는 말씀,
 ``국도극장이라는 이름 참 오랜만에 들으니 괜시리 반갑네요``
이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함께 있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의경인가로 추정되는 남자애의 말이 참 와닿았다.
 ``네? 여기 근처에 그런 극장이 있었나요?``
그런 소리를 할만도 한게 워낙 오래 전 사라진 극장이다보니 그 또래들에겐 국도극장이 뭔지 전혀 모를만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난 ``그럼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대한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명보, 중앙, 서울극장 등과 함께 서울 7대 개봉관 중 한 곳이었죠``

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정확히 20년 전 시골에서 서울로 갓 올라온 난 서울 시내 대형극장들을 돌아다니며 영화 보는 걸 무척 즐겼고 용돈 받는 어린 학생 신분이라 용돈 쪼개고 나이 속여가며 극장출입을 했는데 서울 올라온 직후 가장 먼저 가 본 곳은 서울시네마타운(종로 3가 서울극장을 그 때는 그렇게 불렀음, 이 극장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복합상영관 시스템이라 어린 게다가 촌놈인 내 눈엔 무척 신기해서 여기 거의 주말마다 심지어 시험기간 중에도 들를 정도였음)이었고 여기서 당시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던 사랑과 영혼을 아버지 따라 함께 찾아가 본 게 첫테이프.
그리고 그 해 여름 무렵 마네킨 2, 그 해 추석 무렵 극장직원 아저씨에게 고교생이라 속이고 본 사의 찬미, 그리고 그 근처 단성사에 개봉된 나홀로 집에 1편을 같은 날 다 보기도 했다.

재미 있었다면 재미 있는 점이 그 해 추석 본 맥컬리 컬킨의 나홀로 집에가 상영된 단성사에서 정확히 1년 뒤인 92년 추석에 역시나 맥컬린 컬킨이 나왔던 마이 걸이 상영돼 역시나 보러 갔는데 정확히 1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시기 같은 극장간판에 컬킨의 얼굴이 걸린 것.
이 외에도 그 무렵 충무로 대한극장에 처음 가서 친척들과 함께 본 늑대와 춤을 그리고 같은 충무로의 스카라 극장에서 본 한국영화 잃어버린 너, 이듬 해인 92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함께 보러간 월트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 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당시 국내 초대형 극장인 대한극장에 처음 갔을 때 그 웅장한 화면과 사운드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찰 지경인데 그 때 기분이란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 따라 서울에 처음 놀러와 63빌딩 가서 아이맥스 영화를 관람하며 환호했던 기분이 흡사했다.
시골에 있는 조그만 동시개봉관만 이용하다 그런 델 처음 갔으니 어린 마음에 말도 못 할만큼 신기하고 감동적이었을 것.

하지만 어린 내게 이런 추억을 안겨다준 그 때 그 극장들은 이젠 사라졌거나 혹은 모습이 완전히 변해 이젠 더이상 그 시절 추억을 되새겨주진 못 한다는 쓸쓸한 현실.

다시 국도 얘기로 돌아가 그 순경은 오랜만에 듣는 옛지명이 반가웠던지 일부러 문 밖에까지 나와 손가락으로 위치를 알려주며 ``저기 국도호텔이라는 간판 보이시죠? 저기가 바로 옛날 국도극장이 있던 자리랍니다``

난 한 걸음에 그 곳으로 달려갔고 그 곳에 가보니 극장은 호텔로 바뀌어 있었고 주변도 풍경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옛 모습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곳에 처음 왔던 순간이 떠오르자 묘한 기분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는데 그 이유는 그 자리에서 처음 본 존재들이 이젠 전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 곳을 내 생애 처음 간 날은 정확히 만 20년 전인 1991년 가을 그 해 추석 연휴가 막 시작되는 첫날이었고 그 당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던 해외입양아 문제를 다룬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첫개봉일이 바로 그날 그 극장이었다.

 


당시 여주인공은 최진실이었고 그 때 난 최진실에 빠진데다가 이 영화가 한국영화사상최초 스웨덴 현지로케였는데(그 뒤로도 스웨덴 로케 국내영화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니 아마도 이 영화가 현재까지 유일하게 존재하는 스웨덴 로케물일 듯) 내가 어릴 때부터 가장 동경하며 가보고 싶었던 나라가 스웨덴이어서 이 영화를 꼭 개봉첫날 그것도 첫상영시간에 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던 차였다.

그래서 현재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당시는 서울거리 곳곳에 서울대표 개봉관 영화상영포스터가 게시판 형식으로 붙여져 있었고 이 수잔... 포스터를 보며 극장과 상영일자를 익혀 두었는데 당시 서울지리에 완전히 어두웠지라 남들 같으면 늦잠을 자는 연휴 첫날임에도 알람 맞춰놓고 일찍 잠에서 깨 이 영화개봉관인 국도극장을 정말 물어물어 버스 타고 지하철 갈아타며 어렵사리 혼자 찾아갔다.
그 때만 해도 서울에는 지하철 노선이 4호선까지 밖에 없었던데다 버스 노선도 지금과는 시스템이 완전히 다르고 환승은커녕 안내판도 허술해서 당시 어린 나이 게다가 서울 올라온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나로서는 그 날 을지로 3가까지 혼자 찾아가는 게 대단한 고행 그 자체였다.
게다가 명절 첫날 아침부터 그 멀리 떨어진 영화관 간다고 부모님께 말 할 수도 없는 처지라 친구집에 책 빌리러 간다고 둘러대고 나왔으니 부모님 도움도 일절 바랄 수 없던 처지...

버스 한참 타고가다 2호선 건대에 내려 다시 지하철 타고 간신히 도착한 을지로 3가 역.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출구를 찾아 극장 앞에 당도한 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휴일 첫날 그것도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간 것인데 웬걸! 수백명은 족히 될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이 극장 앞에 몰려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 많은 건 난생처음 봐서 신기함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은 그 때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어느 순간 영화의 여주인공인 최진실이 짠하고 그 곳에 나타난 것인데 난 그 때만 해도 세상물정을 잘 몰랐던데다 인터넷 같은 정보망이 없던 시절이다보니 영화개봉일에 맞춰 개봉관으로 주연배우나 감독 이런 이들이 무대인사라는 걸 하러 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

거기 온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 사람들이라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배우도 보고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을까하고 일부러 상영첫날 첫시간에 맞춰 온 것일테지만.
그런 사실을 알리가 없었던 난 그저 난생처음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그것도 당대 최고의 톱스타 최진실을 바로 코 앞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아 그저 멍하니 서 있었고 차에서 내린 최진실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극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나도 그 인파 속을 헤치며 들어갔다.

운이 좋았던지 내가 서 있던 자리 바로 옆에 차가 멈춰서며 최진실이 내렸고 그 덕에 잠시지만 바로 코 앞에서 모습을 봤던 것인데 아침이라 관객도 없는 조용한 극장에서 영화만 보고 올 상황을 예상했던 난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고 다른 이들은 그런 상황에 익숙했던지 카메라며 꽃다발이며 참 여러가지 준비를 해 와 `아 이래서 경험이라는 게 중요한 거구나`라는 걸 당시 실감하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떠오른다.
난생처음 본 수많은 인파들, 영화상영 직전 최진실이 무대 위로 홀로 올라와 영화 잘 봐달라는 인사를 하며 미소 짓던 모습, 관객들이 카메라 플래쉬를 여기저기서 터뜨리자 불빛에 당황해 하면서도 침착함을 애써 유지하려던 모습,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극장 내 카메라 사용이나 촬영이 제지 안 되던 시절이라 영화 상영 내내 스크린에 최진실 모습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마구 찍어대 극몰입을 방해하던 팬들
 지금은 극장 내 촬영이 일절금지라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인데 당시 난 그런 광경을 난생처음 목격해 그 점이 참 이해 안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당시 속으로 `서울 사람들은 영화를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카메라로 찍는 걸 좋아하나보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던 그 때 그 시절.

아무튼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1회 상영은 끝났고 난 영화관을 막 빠져 나가려는데 사람들이 어딘가로 우르르 몰려가며 일대 소동이 빚어지는 것이었다.
최진실이 막간을 이용해 싸인회를 한다고 해서 팬들이 흥분한 것이고 몰려가는 팬들과 빠져 나가려는 최진실 측, 여기에 통제하려는 극장 직원들이 맞물려 여기저기서 괴성에 욕설에 고성에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어이 없게도 난 사람들에 밀리다 운이 좋았던지 또 최진실이 빠져 나가려는 곳에서 딱 마주쳐 엉겁결에 싸인까지 받게 되었다.

어떻게 된건가 하면 그 극장 입구 왼편 2층인가에 화장실이 있었고 거기서 나오다 때마침 매니저의 호위를 받으며 극장을 빠져 나가려는 최진실과 순간 딱 마주쳐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카드를 내밀었더니 최진실 역시나 급히 대충 싸인해주고는 휙 지나갔던 것.
바로 저 맨 위 사진에 나오는 최진실이 빨간 스포츠카를 배경으로 찍은 모습이 담긴 카드인데 이것도 내가 애초 갖고 있던 게 아니라 그 소동 중 누가 바닥에 떨어뜨린 걸 주운 것이고 그 걸 주워든 직후 그렇게 된 것.

생각해보라 시골 촌놈 그것도 어린 소년이 난생처음 연예인 보는 광경, 듣보잡이라 해도 감개무량인데 그냥 스타도 아닌 당대 획을 그은 최고스타에다 이제는 레전드로 기록된 천하의 최진실이 처음 만나 바로 옆에서 보고 싸인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어떤 기분으로 다가올지를.

나로서는 그야말로 시트콤 같은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그 카드를 들고 나가보니 바깥은 더 난리통이었다. 최진실 쫓아가려다 넘어져 다친 사람, 밀다가 몸싸움 하는 여자애들 여기에 최진실은 주차된 차로 가려다 팬들에 막혀 도저히 못 빠져나가게 되자 급히 극장 오른 편에 있던 제과점으로 피신했는데 거기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미리 싸인을 맞췄는지 아니면 사태를 파악 했는지 최진실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문을 안 쪽에서 자물쇠로 잠궈버렸고 최진실은 주방 쪽인가 암튼 시야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고 여주인은 뒤따라 쥬스잔을 들고 따라가는 모습, 사람들은 못 들어가게 되자 일제히 그 제과점 앞을 경비처럼 지키고 서는 광경 그야말로 촌극도 그런 촌극이 없었던 것 같다.

한참동안 대치(?) 상태가 이어지자 어떤 키 크고 안경 쓴 머리 기른 남자가 사람들 앞으로 나서더니 옆에 있는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한테 ``그럼 급히 간단히 싸인회를 하던가 아니면 싸인한 용지를 나눠주는 쪽으로 할까?`` 이런 말을 하는 게 들렸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는 다름아닌 최진실의 매니저 배병수씨였고 최진실이 제과점 안에 갇힌데다 팬들이 쉽게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그런 의견을 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사람들이 어떤 곳을 향해 웅성웅성거리길래 돌아보니 아주 낯 익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었는데 서글서글하게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고 눈치를 보니 누나를 응원하러 그 곳에 온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그 곳에 있는 배병수씨와 얘기를 주고받다 이내 곧 사라졌고 시간을 더이상 끌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극장직원들이 출동해 길을 터주어 최진실이 차에 올라타 황급히 사라지며 그 날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여기까지가 기억을 더듬어 쓴 그 날의 기억인데 얘기가 상당히 길어졌습니다만 추억을 떠올리다보니 그리고 막상 그 극장 앞에 당도해 그 곳을 바라보다보니 까맣게 잊고있던 옛날 옛적 일임에도 바로바로 다 마치 편집하듯 전부 생생히 떠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그 날 기록은 사진 한 장 없지만 그 날 최진실이 입은 검은 자켓과 바지 여기에 같은 색상인 검은 모자, 그리고 배병수씨의 그 바바리 코트까지 전부 기억나네요

그런데 그 곳에서 이런 기억을 떠올리다 어느 순간 문득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던 이유는 아까 잠깐 언급한대로 그 날의 주인공들이 이젠 그 누구도 그 자리에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날 여주인공 최진실은 다 아는대로 몇년 전 사람들 곁을 떠났고 현장을 지휘하던 배병수씨도 그리고 누나를 응원왔던 동생 진영씨도 전부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 날 영화의 실제주인공이었던 수잔 브링크.
한국 이름이 신유숙인가로 기억하는데 이 수잔 아니 유숙씨가 오래 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찌어찌하다 알게 된 것인데 이 유숙씨는 지병으로 인해 안타깝게 40대 나이에 운명하게 되었고 그것도 최진실씨가 세상과 작별하던 그 무렵 같은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더욱 놀랐습니다.


비운의 여인 수잔 브링크씨,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9년 1월 23일 향년 45세의 나이로 지병인 암으로 운명, 한국의 해외 입양아 실태를 세상에 알린 이 분은 자신의 장례식에 스웨덴에 거주 중인 한국 입양아들을 불러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반전은 이 뿐만이 아닌데 수잔 브링크 이 영화를 본 분들은 기억 하겠지만 극 중 유숙씨는 스웨덴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가출해 갖은 고생을 하다가 그렇게도 그리던 고국의 친가족을 만나 행복의 시간들을 한국에서 보내는 것으로 극이 마무리 되죠.
하지만 현실은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입양 당시와 이후보다 더 암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유숙씨 친오빠가(극 중 안병경씨가 연기) 사업자금 명목으로 몇십년만에 만난 누이동생 유숙씨에게 돈을 빌려간 뒤 갚지 않고 잠적했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입양아로 그리고 미혼모로 홀로 고생고생해 번 돈을 오빠 때문에 날리게 된 유숙씨가 격분해서 어머니에게(윗 사진에서 보이는대로 김윤경씨가 연기) 오빠를 만나게 해달라며 찾아가자 친모는 도리어 오빠를 감싸기에만 급급한 채 유숙씨를 나 몰라라 했다고 합니다.

결국 돈도 날리고 간신히 찾은 가족들로부터 두 번 버림받는 아픔을 당한 유숙씨는 스웨덴으로 돌아갔는데 여기서 또한번 극적인 상황을 맞게 되었다네요.
자신을 학대했던 스웨덴 양부모가 유숙씨의 그간 사정을 알게 되었고 수소문 끝에 유숙씨 있는 곳을 알아내 찾아와서는 지난 날의 자신들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유숙씨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유숙씨 일을 도우며 뒤늦게 부모역할을 해주었는데 그러는 사이 유숙씨 건강이 악화돼 젊은 나이에 그만...

정말 영화 속보다 더 고독하고 기구한 삶을 살다 한 많은 생을 마감한 수잔 브링크 유숙씨.
여기에 이 유숙씨 역할을 맡아 불꽃같은 연기를 선보였던 최진실, 이 최진실 역시 인생이 파란만장 그 자체였고 이 두 여인 모두 같은 시기에 나란히 저 세상 분들이 되었다니 우연치곤 참 아이러니 합니다.

여기에 아까 말한대로 그 날 현장에 있던 배병수씨도 그리고 동생 진영씨도 돌아가시고 거기에다 그 날 무대였던 국도극장도 이젠 사라져 없고 이도 모자라 최진실이 그 때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공간인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그 제과점도 자취를 감추었더군요.
아마 지금의 그 제일은행 자리 아니면 그 옆 편의점 둘 중 한 곳 같은데...

영화의 실제 주인공 수잔 브링크와 극 중 주인공 최진실, 동생 진영과 매니저 배병수, 국도극장, 제과점 모두 6가지나 되는 그 날의 주인공들이 불과 만 20년만에 전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착찹해지며 만감이 교차하던 그 날이었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또 있네요!
작품의 감독이었던 장길수씨, 당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 여러 편의 영화를 대힛트 시키며 충무로의 흥행감독 겸 작품성도 인정받는 감독으로 떠올랐는데 승승장구만 하다 바로 이 작품 이후 연출하는 영화들이 전부 비평과 흥행 모두 모조리 실패해 97년작 아버지를 끝으로 그의 영화제작 필모그래피는 막을 내립니다 이후 제작한 작품이 한 편도 없으며 현재 감독 대신 영화학과 강사인가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얘기를 너무 길게 했는데 혼자 담아두기엔 마음이 계속 무거워져 여기 털어놓게 되었는데 생각할수록 허망하고 쓸쓸해집니다 그 잘 나가던 최진실과 매니저로 동시대 가장 잘 나가던 배병수도 누나 잘 만나 연예인도 되고 팔자 확 피며 왕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던 동생 최진영도 그 잘 나가던 국도극장도 그리고 흥행감독으로 당대 최고 잘 나가던 장길수 감독도 또 행복만이 기다릴 줄 알았던 수잔 브링크 인생도 전부 하나같이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이.

이 얘기 그러니까 그 시절 그 날 91년 9월의 추억은 제가 어디서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뜬금없이 이 새벽에 여기 털어놓게 되었습니다만 얘기하고나니 더 헛헛해집니다.
인생이 원래 이렇게 허무하고 덧없는 것일까요?
정확히 2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 세월동안 그 많은 것들을 사람과 건물 가리지 않고 그것도 그렇게 잘 나가던 것들만 골라 허망하게 송두리째 사라지게 만들다니.
괜스레 심란하고 우울해졌던 그 날의 기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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