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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외모 지상주의,새로운 차별의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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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루키즘(lookism)"이라는 용어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현대 사회에서 외모가 성별이나 나이,인종처럼 사회적 차별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신조어라고 하더군요.
하긴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요즘은 외모도 경쟁력(혹은 자본)-솔직히 이 표현만큼 외모지상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용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중 하나라고 한다니,자본주의 사회에서 외모가 차별의 매개가 되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한 현상인가요?

새삼스럽게 최근 외모 지상주의의 폐단에 대해 떠들면서....

"외모보다는 내실이 더 중요하다."나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식의 지극타당한(!) 말을 반복할 생각은 없습니다만,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예찬은 현대 사회에서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아름다운 외모는 사람들 사이에서 찬양의 대상이 되었고,많은 사람들이 좀 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기 위해 노력(?)했었으니 말입니다.(심지어 과거에도 "얼굴로만 먹고 사는 직업"이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왜 유독 현대 사회에서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찬양이나 추구는 외모 지상주의라고 폄하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대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가 진실로 아름다운 외모를 추구하거나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미남,미녀들로 일컬어 지는 사람들의 얼굴,다시 말해 "누가 보아도 잘 생긴 얼굴"이라는 것들이 이미 상당히 객관적으로 획일화 되어 있으며,이들의 외모가 "개성의 발현"이라는 미(美)의 본질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미의 기준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기실은 타인의 취향임을 알 수 있지요.

혹은 타인이 선별하여 선택해 주는 기준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마치 우리들 사고나 취향의 대부분이 자본의 선택과 선별을 거친 것들이 둣이 말입니다.물론 우리들은 우리들을 구성하는 그런 것들이 철저히 개인적인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현대 사회를 살아 가면서,누구도 그 자신은 외모 지상주의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일부 극 소수를 제외하고.)

날이면 날마다 접하게 되는 영상 매체나 보도 매체들은,우리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미적 기준을 정형화(시각적 정형화 작업?)시켜 줄 뿐만 아니라,사회적 관계망에서도 그런 정형화된 외모를 기준으로 한 개인적이고 일차적인 호오(好惡)가 사회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보다 더 나아가,외모가 차별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기를 쓰고-성형외과니 사진 빨이니 하면서-자신의 외모를 꾸미거나 과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겠지요.)

물론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에는-차별의 요건이 되는-꼭 외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학력이나 학벌,직업,재산 상태 등등에 따라 우리는 "사람 값"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매기는 데 너무나도 익숙하지요.(만약 진정으로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라면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람 값을 가질 것이며,어떤 특정한 것의 절대적 우위를 인정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니,이 처럼 "사람 값"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회에서 외모라는 차별의 요건이 하나 더 추가 됐다고 특별히 신기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외모를 통한 차별이 더 문제인 것은,그 누구도 자신의 신체가 그 자신으로부터 온전히 독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즉 재산이나 학벌과 같은 것들은 결국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부차적인 사안에 지나지 않지만...(다시 말해 그 자신이 차별의 부당함을 쉽게 인식할 수 있지만.)
외모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어지거나,혹은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그런 의미에서 더 강력한 차별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더 나은 외모를 위해 자신의 신체에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사회적 낙오자처럼 간주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이런 잘못된 차별의 합리화에 힘 입어....

자본은 나름대로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고 말입니다.(흔히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미용 산업을 외모지상주의의 부산물 정도로 간주하나,사실 그들은 결코 부산물이 아닌,공생 관계이자,경우에 따라서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인간만의 특징일 것입니다.
외모에 대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또한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미적(美的) 추구인지,그게 아니라면 실질적으로는 타인의 시각,특히 자본의 시각을 추종하는 허위 의식인지를 잘 따져 봐야 할 것이며...(더 나아가 그 자신이 기실은 차별을 재생산하는 존재-자본이 만들어 놓은-가 아닌지 여부도 잘 따져 봐야 할 것이고 말입니다.)

미학(美學)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다양성의 추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입니다.

덧붙여...
위 초상화는 르네상스기 대표적 미녀로 추앙받았던 이사벨라 데스테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케치한 초상화 입니다.(두 종류의 초상화가 있는데,티치아노의 초상화는 이상화된-실물을 보지 않고 그린-그림이기에 따로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스케치에서도 알 수 있듯이,실제로는 이사벨라 데스테는 소위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였던 모양인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미인 소리를 들었다니...

미적 기준이란 객관적이지도,객관적일 수도 없다는 말이 정석인 것 같습니다.

최소한 외모 지상주의가 횡횡하지 않았던,당시에는 말입니다.(그렇다고,르네상스기 사람들이 미적 감각이 부족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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