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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세상을 놀래켰던 그 때 그 사건의 주인공들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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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예전에 사건이나 방송을 통해 존재가 알려져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분들을 거론하니 저도 요즘 근황이 몹스 궁금한 분들이 생각나 두서없이 나열합니다.


1. 강타 닮은 꽃미남 소년 박경원을 기억 하십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97년 가을 한 편의 영화가 조용히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독특한 연출세계를 지닌 장선우 감독의 나쁜 아이들이라는 영화였는데 당시 불량청소년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옴니버스 방식으로 제작한 영화였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전문배우들이 아닌 일반인 즉 진짜 불량 청소년들이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맡고 출연했다.

총 6명인가 되는 소년소녀들이었는데 이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애가 한 명 있으니 영화 속에서 춤짱을 꿈꾸다 실력부족으로 좌절하게 되는 소년 역으로 등장한 배우인데 이름이 박경원!
(오래 전 기억이라 이 이름이 정확한지는 장담 못 함)
이 박경원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O.T의 강타를 연상시키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준수한 용모로 출연진들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듯 인물이 남다르다보니 이 영화 출연 후 영화가 실패 했음에도 영화나 드라마 섭외를 많이 받았다는 후문이 있는데 그 이후 소식은 깜깜.
당시 79년생 18세였으니 지금 나이 29의 완숙한 남성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여전히 준수할까?
그리고 당시 가출로 인해 자신의 부모님들이 드러누웠다고 했는데 여전히 속 썩이는 자식으로 살고 있을까?

참! 재경이인가 하는 소년이 출연진 중 있었는데(얼굴 좀 날카롭게 생겼던 것으로 기억됨) 이 아이는 오래 전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꽃 같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말이다.



2. 97년 여름을 뒤흔든 빨간 마후라 사건

H.O.T의 행복과 젝키의 폼생폼사, UP의 뿌요뿌요와 바다가 큰 인기를 끌었고 홍콩의 중국반환, 한보 사태, 경기악화, 문민정부 말기 등으로 뒤숭숭했던 97년 여름 또 하나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으니 일명 빨간 마후라 사건.

뭐 이 건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의 중심에 있던 아이들인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여자애는 몇 년 전 지방의 한 유흥가에서 일 한다는 제보가 보도되었고 문제는 남자애들.
당시 강동의 S공고에 재학 중이던 2명의 남자아이들은 근황이 전해진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17세였으니(남자애 둘은 80년생, 여자애는 82년생, 그리고 해당 비디오 제작연도는 96년 여름으로 알고 있음) 지금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 악몽같은 사건을 떨쳐 버리고 잘 살고 있을지 아니면 아직도 휴유증에 시달리고 있을지...


3. 잃어버린 너라는 자전적 소설과 작가 김윤희씨를 아십니까?

내가 초딩 무렵에 보았던 책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잃어버린 너라는 작품인데 한 여인이 자신의 아픈 사랑과 추억을 책으로 옮긴 자전적 소설로 주인공 김윤희씨의 담담한 회고형식의 내용이 퍽 인상적이었다.
무용을 전공했던 부잣집 딸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다 잘못된 결혼으로 호된 고생을 하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는 그만 비극적인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나고.
이 책은 당대 베스트셀러가 되어 해당출판사였던 다나 출판사가 큰 수익을 얻었으며 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법 성공을 거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91년 김혜수, 강석우 주연으로 제작)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김윤희씨는 이 책이 발간될 당시 유방암인가 암으로 투병생활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암투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출판사 대표의 문구가 책 끝머리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김윤희씨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계실까?
그 병을 잘 치유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계실까? 아니면 하늘의 별이 되셨을까?
인생이 참 기구한 분으로 안타깝게 기억되고 있는데...


4. 미락골 개구쟁이 소년 훈이를 기억 하십니까?

1980년대 후반 MBC사에서 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반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다큐 형식으로 찍었던 인간시대로 아마 일반인의 모습을 찍는 프로그램의 원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의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의 원조가 아마 이 인간시대가 아닐지?)
그 주인공들은 어느 철물점 주인 아저씨부터 중국집 배달부, 작은 인쇄소 사장, 떠돌이 엿장수, 지게차 배달부 같은 말그대로 우리 주변 소시민들이었는데 그 중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는 이가 한 명 있다.
훈이라는 이름의 소년.

해당 프로그램 제목은 미락골 개구쟁이 훈이였고 강원도인가 어느 산골에 있는 미락골이라는 마을의 초딩 소년인 훈이가 주인공으로 한 산골소년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당시 이 훈이가 얼음판 위에서 나무로 직접 만든 썰매 타고 다니고 팽이치기 하는 순박한 모습을 보며 당시 각박한 삶을 살던 도시인들은 많은 위로와 향수를 느꼈을 것인데 이 훈이가 인기를 끌자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은 곧 속편까지 제작했다.

`미락골 개구쟁이 훈이 도시로 가다`라는 제목으로 훈이가 서울 나들이하는 모습을 담아내 방송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훈이라는 이름의 소년 80년대 후반 당시(88년이었음 올림픽 무렵기간이라 잘 기억함) 초등생이었으니 얼추 계산해보면 지금 대략 30을 전후하는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산골마을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도시로 나와 살고 있을까?


5. 독극물 요구르트 사건의 주인공 아주머니는 지금 어떻게?

1983년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른바 보험금을 노린 남편독살사건으로 빚에 시달리던 한 평범한 부부가 고통을 견디다 못 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는 내용의 사건.

병으로 인해 병원에 장기입원 중이던 남편과 그를 작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며 병든 남편과 집안을 돌보던 어느 주부는 빚으로 심한 압박을 받아와 결국 두 사람은 머리를 짜내 남편 앞으로 무더기 보험에 가입한 뒤 남편이 마실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투여해 결국 남편이 숨지자 보험금을 타내려 하다 발각된 것이 주요 사건경위.

문제는 그 주부가 모르는 누군가가 병문안을 왔다 문제의 요구르트를 놓고 간 것처럼 꾸몄는데 그 주부의 아들이 상황증언을 하다 증언내용이 너무 정확함을 수상히 여긴 수사관의 오랜 탐문 끝에 모든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그 아들은 6,7살 정도의 아동이었는데 어린아이의 진술치고는 너무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이라는 점이 의심스러웠던 사건담당 수사관이 추궁 끝에 밝혀낸 것으로 알고 있음)

이 사건은 후에 자주 수사물이나 추리소설 등에 인용되어 왔으며 수사반장을 통해서도 그리고 죄와 벌 등에서도 극화된 적이 있으며 보험사기사건 그리고 독극물 관련사건, 물질만능주의 세상에 대해 일침을 가한 사건으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당시 그 주부는 분명히 남편의 동의하에 그랬다고 진술 했는데 문제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남편이 사망했기에 이를 증명할 길이 없었던 것.

하여간 그 사건 이후 문제의 주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는데 아마 지금쯤 출소를 했을 것이다.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종종 궁금해지곤 한다.


6. 죽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김현희의 KAL기 폭파 사건으로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의 제 6공화국 출범과 서울 올림픽 준비로 전국이 술렁였던 88년 초 비극적인 사건이 터졌다.
당시 5세 가령의 여자아이였던 원혜준양이 유괴되어 살해된 안타까운 사건으로 범인은 당시 20대 중반의 아주 젊은 청년.
단지 자신의 결혼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우발적으로 아이를 살해한 것으로 밝혀져 세상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아이가 실종된 직후 아이의 부모는 생업을 포기한 채 대량의 전단을 작성해 직접 발로 뛰며 눈물로 아이의 무사귀환을 빌었고 공개수사에 들어갔으며 방송을 통해 아이의 부모가 피끓는 심정을 토로해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지만 결국 아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 했다.
(김현희의 사건경위 기자회견이 있던 날 범인은 체포 되었고 결국 모든 희망이 무너진 부모와 가족들은 대성통곡을 해 시청자들을 눈물짓게 만들었음.
김현희의 그 유명한 체크무늬 자켓 차림의 사건경위 기자회견날과 같은 날 범인체포로 사건이 종결 되었는데 당시 일간지에 두 사건 사진이 동시에 실려있던(1면에는 김현희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2면에는 사건현장 재현하는 범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범인의 얼굴이나 신상이 자세히 보도 되었으며 하다못해 거주지 주소까지 보도했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 범인은 사형에 처해졌으며(당시는 군사정권 시절이라 법이 아주 엄중했음).

인간의 잔인함과 세상의 무서움을 느끼게 해 주었던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이 젊은 부부와 동생(당시 피해 어린이에게 걸음마 떼는 나이의 여동생이 있었음)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 사건의 충격을 이겨내고 꿋꿋이 잘 살고 있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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