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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장윤정이 국제대회에서 겪은 서러움과 비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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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역대 미스코리아 관련 포스팅이2009/07/08 - [미디어,연예,문화] - 내가뽑은 역대최고 미스코리아들! 
 베스트로 다음 메인에 오르고 2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는데,(감사합니다.)
댓글중 일부분이지만 준 미스유니버스 출신 장윤정관련 언쟁이 벌어져 ,
장윤정에 관한 비화를 포스팅해보고자 한다
국제미인대회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가한 미스 코리아들이 겪은 재미 있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약소국가로서 당한 씁쓸한 에피소드를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아무튼 얘기를 시작하면,

어린 소녀의 몸으로 홀로 고군분투해 사상 최초 미스 유니버스 2위를 차지한 장윤정!

87년 미스 코리아 진 장윤정은 특이한 이력을 몇 가지 지니고 있으니 일단 지역 출신으로는 드물게 진의 영광을 차지 했다는 점이고 또 고교 2년생 미성년자 신분으로 당선 되었으며 또 한국 최초 유니버스 2위에 올랐다는 것.
(거의 서울이 차지하는 기존과는 달리 미스 대구 진으로 영광을 차지 했으며 참고로 그 2년 전인 85년 진 배영란씨가 전북 진으로 참가해 본선 진을 차지한 적이 있긴 하지만 대신 배씨는 서울 태생으로 본적만 전주였음.그리고 원래 이 대회는 고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만 18세 이상만 참가가 가능하지만 우연히 고교 2학년 때 미스 대구를 배출하는 유명 미용실에 들렀다가 참가를 결정지었으나 참가나이 미달관계로 그저 대회실전 경험이나 미리 익혀두라는 차원에서 대구 예선 나갔다가 덜컥 대구 진으로 뽑혀 자동으로 본선진출이 결정되어 결국 나중에는 `만 18세이며 고교를 졸업한 재수생`이라고 프로필을 속여 대회본선에 참가 진을 차지했지만 당선 직후 여고생인 사실이 밝혀져 자격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으나 주최사 도움으로 구제를 받아 자격을 유지)

아무튼 나중에 방송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던 이 장윤정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 출전기는 그야말로 고난과 눈물의 연속이었으니 사연은 이렇다.

우리나라는 원래 해외대회 출전시 아무런 지원이 없다.
주최측인 한국일보사는 국제대회 참가자에게 당사자용 비행기 티켓과 이브닝 드레스 한두벌 제공하는 게 전부라 대회현지의 모든 일정들은 오로지 참가자 혼자 소화해내야 한다.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계원예고 3학년이었던 장씨는(원래는 대구 경북예고 재학 중이었으나 미스코리아 진이 되면서 전가족이 서울로 이주해 전학해 계원으로 갔고 이 때 장씨는 동갑내기 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되는데 이 친구가 바로 89년 진이자 지금의 탤런트인 오현경) 여고생 몸으로 샤프론이나 가족 한 명 동행하지 않은 상태로 대회지인 대만 타이뻬이로 여러 벌의 드레스며 한복, 수영복, 정장 등 무거운 옷가방을 든 채 홀로 날아갔다.

혼자 몸으로 말도 안 통하는 이국땅에 간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마당에 대회 장소 도착하자마자 고행이 시작 되었으니 일단 다른 나라에서 참가한 각국의 후보들을 보는 순간 그들과는 달리 빈약한 자신의 가슴 때문에 기가 죽었다는데 그나마 이건 약과!
참가자들 숙소인 공항 호텔은 번화가 쪽이 아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숲에 위치해 있어 상당히 답답했고 제공되는 음식마저도 터무니 없을만큼 형편 없어서 장씨는 우울함에다가 배고픔마저 참아내야 했던 수준.
국제대회라 나름 기대했던 화려한 상황과는 달리 일이 무척 열악하게 돌아가자 후보들 중 미스 그리스는 `도저히 못 참겠다`라고 주최측에 항의하며 합숙 3일만에 자기 짐을 싸들고 대회를 기권한 채 조국으로 귀국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그저 화려하게만 보이는 국제미인대회도 알고보면 이렇게 초라하고 어수선한 이면이 있음)

그런 와중에 장씨는 국위선양을 위해 최선을 다 했지만 일이 여의치는 않았는데 일단 헤어와 화장 등 미용 부분.
대회 주최측은 후보들에게 스타일 연출을 개인이 직접 알아서 할 것을 강요했는데 불과 고 3 소녀인지라 화장이나 머리 만지는 일에 서툴렀던 장씨로서는 그저 황당하고 암담한 주문일 뿐이었는데 더 기가 찬 건 선진국 대표들은 코디나 샤프론들이 와서 살짝살짝 과정(?)을 도운 것이다.

이런 마당에 장씨는 대회 출전 기간인 20여일 동안 하루 4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지 못 하는 강행군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약소국가의 서러움을 여러 번 느꼈다고 대회 당시를 회상하기도.

약소국의 서러움

일단 한동안 김치를 먹지 못 해 괴로웠는데 마침 알게 된 대만교포여성에게 부탁해 그녀가 어렵사리 시내 마트에서 김치를 구입해다 줘서 방에 두고 먹었으나 다른 나라 대표들이 방에 와서는 `무슨 썩은 내가 방에서 난다`며 눈살을 찌푸리며 방을 나가버리고 심지어 호텔 청소부가 냄새 난다며 멀쩡한 김치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까지 벌어져 장씨는 속상함에 홀로 속을 끓이기도.

여기다 룸메이트로부터 수난을 겪기도 했으니 이 대회는 규정상 후보들을 한 방에 2명씩 배치하는데 그녀의 룸메이트는 다름 아닌 미스 유니버스가 된 태국의 폰팁 나키룬 카녹!


미스 태국이긴 하지만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시민이 된 그녀는 캘리포니아 소재의 파사데나 사립대생으로 재학 중이며 상당한 갑부집 딸이었다고 한다.
장씨의 표현에 따르면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인 자신과는 달리 폰팁은 까탈스럽고 새침데기 성격이라 한 방을 쓰긴 했지만 정을 거의 못 느꼈고 그런 성격으로 인해 후보들 사이에서도 태국 대표의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아 아무도 수상을 예견 못 했다고.
그래서 마지막 순간 자신과 태국 두 사람이 남았을 때 자신이 될거라 믿었다는 말도 했는데 어느 날 이 룸메이트 태국 대표가 보석상자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린 것이다.

장윤정보다 두 살 위였던 부잣집 재미교포 여대생인 룸메이트 폰팁은 돈 많은 집 딸답게 고가의 명품 옷들과 다이아몬드나 루비 같은 비싼 보석 장신구들이 많았는데 아직 어린 소녀였던 그리고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 했던 장씨 입장에서는 그런 폰팁의 모습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런 탓에 호기심으로 폰팁의 옷과 장신구들을 빤히 쳐다보곤 했는데 문제가 터진 것!
장윤정의 눈길을 의식하던 폰팁은 어느 날 자신의 보석들을 만지작대다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씨를 한 번 흘깃하더니 전부 보석함에 넣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는데 장씨도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와보니 그녀의 보석상자에는 `노 터치! 여기에는 아무도 손 대지 마시오`라는 메모지가 붙여져 있었던 것.

룸메이트라고 해 봤자 자신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은근히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 했다는 생각에 장씨는 속상함과 자존심 상하는 것을 느껴야 했고 아무튼 폰팁은 이에 아랑곳 않은 채 그 보석들을 자신의 무대의상으로 사용하느라 바빴다.
이브닝 드레스와 민속의상 심사 때 입을 옷의 보석 장신구로(태국의 전통의상인데 이 옷의 이름을 모르겠음, 거 왜 한 쪽 어깨 드러내고 쇼울 같을 걸 걸치는 태국여성들 전통의상).

문제는 이런 서러움이 개인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회전체적으로도 있었다는 것인데 대회오프닝이나 거리촬영용 전체참가후보 군무신에서.
장씨는 이 때 묘한 것을 느꼈는데 이상하게 대회스텝들이 미국이나 일본, 유럽 같은 선진국 후보들은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앞쪽 자리에 배치시키고 자신이나 중후진국 대표들은 앞사람에 가려져 카메라에도 잘 잡히지 않는 뒤쪽 자리에 세운다는 걸 감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속으로 `약소국가의 서러움과 대접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절실히 깨닫고는 오기로 모험을 시도 했으니 무용장면시 처음에는 뒤 쪽에 서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은근슬쩍 앞으로 움직여 선진국 후보들과 나란히 선 것.
물론 이 과정 중에 카메라 감독이나 조연출자 등이 `거기 미스 코리아 얼른 뒤로 다시 빠져요!`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지만 끝내 못 들은 척 애써 무시하며...

장윤정의 영리함과 비상함

그리고 영리하고 눈치가 빨랐던 그녀는 이런 묘수를 쓰기도 했는데 무대용 민속의상을 스텝에게 제시하는 자리에서 일부러 한복 한 벌과 족두리 하나만 보여준 것.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대회 오프닝 무대는 모두 조국의 민속의상 그러니까 치파오나 기모노, 한복 등을 입고 나오는 방식으로 대회 스텝들이 이를 미리 체크하게 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의상이 큰 경우는 다른 후보들 모습이 가려지는 걸 막기 위해 무대 뒤쪽에 편성하기 때문(특히 브라질 등 남미의상들은 크고 화려하기 때문에 무대 앞 쪽에는 어지간해서는 잘 세우지 않음).
그런데 이런 사실을 사전에 미리 파악한 장씨가 일부러 스텝요청시에 간단한 옷가지만 내밀어서 앞 쪽 배열을 지정 받았는데 막상 대회 행사날에는 화려한 왕비의상을 입어 대회 스텝들이 다들 경악을 금치 못 했던 것!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옷이 작을 줄 알고 무대 앞 쪽에 세우게 놔뒀는데 막상 해당일에는 큼지막한 옷을 걸치고 나왔으니 그들은 결국 장씨의 계략(?)에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아무튼 약소국가의 서러움 그리고 미주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나라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 한 채 힘 들게 혼자 대회를 치루는 미스 코리아들로서는 대회가 그야말로 각개전투인데 이 장씨는 마치 여전사처럼 용감하게 대회에 임해서 결국 스텝들과 다른 나라 후보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래서 뭐든 노력하는 사람, 야무진 사람은 누구도 못 당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무척 욕심내던 상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민속의상상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한복집을 운영 했을만큼 우리 전통한복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그녀는 대회를 위해 유난히 좋은 한복들을 골라 대회장에 가져갔으며 총 3명을 뽑는 민속의상상을 노렸는데 그만 한국전통 쪽머리를 제대로 만지지 못 하는 바람에 순위에서 밀려나 최종 민속의상상 수상자는 1위 태국의 폰팁, 2위 미국의 코트니 깁스, 3위 일본의 사카구치 미즈호가 가져가 버린 것.

그녀가 내심 1위 자리보다 더 강하게 노렸던 그리고 미스 코리아들이 유난히 많이 가져갔던 민속의상상이 좌절되자 속 상하고 서글픈 마음에 수상발표 직후 화장실로 달려가 펑펑 울었다고 한다.
놓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속을 태웠던 보석장신구를 한 옷을 입은 태국이 1위를 했으니...
나중에 장씨는 이 때를 회상하며 `그 때 내가 좀더 성숙해서 쪽머리 모양만 잘 낼 수 있었다면 수상이 가능했을텐데`라고 하며 두고두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이 민속의상상은 74년 김은정, 77년 김성희, 83년 김종중씨 등이 1위를 수상한 적이 있고 장씨가 못 해 낸 이후 2001년 김사랑이 드디어 1위를 한 적이 있다.

긴박함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본선

아무튼 이런 와중에 대회본선은 치뤄졌고 장씨는 노력한 탓에 무대의 가장 좋은 위치에서 대회를 치루게 되었는데 1차 예선 통과자 발표부터 긴장의 연속이었으니 그 대회는 이례적으로 아시아 대표들이 대거 입상했는데(1위 태국, 2위 한국, 3위 멕시코, 4위 일본, 5위 홍콩) 하필 한국 발표를 가장 늦게 한 것!
사회자가 가장 먼저 홍콩을 발표하자 아시아 지역에서는 1명 정도의 통과자가 나올거라 예상한 그녀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고 다음으로 일본을 호명하자 `이젠 정말 끝나 버렸구나`, 그리고 태국을 발표하자 `이젠 집에 갈 일만 남았구나`라며 암담한 기분으로 서 있었는데 태국 바로 다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기쁨을 감추지 못 했다고.

하지만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바로 인터뷰 심사.
미스 일본과 태국은 둘다 재미교포라(공교롭게도 미스 일본인 미즈호 역시 출신은 오사카지만 당시 미국에 거주 중인 재미교포 일본인이었음)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홍콩은 당시 영국 관할이라 영어실력 말 할 것도 없어서 세 명 모두 통역이 필요 없었지만 장윤정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나마 나온 통역관도 형편 없는 수준이었던 것!

참고로 장씨는 통역 때문에 대회기간 내내 상당히 애를 먹었는데 자그만치 5번이나 통역인이 교체 되었고 대회 인터뷰 심사 때는 대만 대사관 직원의 자녀인 여고생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 여자애는 우리 말을 더듬더듬 알아듣고 말 하는 수준에 영어만 기가 막히게 잘 했던 것인데 왜 그런 사람 있잖아?
교포 중에 우리 말은 유딩 수준으로 간신히 구사하면서 영어만 잘 하는 사람!
이 여자애가 딱 그래서 사회자의 영어는 잘 알아 들었던 반면 장씨에게 진행자의 질문을 우리 말로 잘 전달하지 못 했고 장씨의 대답 역시 묘하게 영어로 옮긴 것이다.
(대회 당시 인터뷰 장면을 보면 애써 미소는 짓고 있지만 장씨가 통역 때문에 당황해 하는 게 화면에 적나라하게 비춰짐!
아무튼 이 통역소녀 영어발음 하나는 죽이던데 대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에만 나가면 우리 말을 자꾸 까먹는건지?
화교들은 둘만 붙어도 자기네 나라 말을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교포 2세만 되어도 우리 말을 간신히 구사하는 경우가 숱하니)

여기서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했고 결국 예선에서는 장씨가 미스 태국 폰팁보다 더 높은 점수로 통과 했음에도 세련된 영어와 침착한 무대매너를 선보인 태국이 우승을 차지하고 그녀는 2위로 만족해야 했다.

최종 2명만 남았을 때 장씨는 자신이 우승할거라 거의 확신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대회 기간 동안 폰팁과 한 방을 쓰면서 그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는데 성격이나 인기 면 그리고 대회 관계자들 평판에서 태국이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거나 주목을 끈 적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가 되었고, 후일담에 의하면 이 때 장씨는 약간의 실수를 했으니 발표 순간 자신이 된 줄 알고 울음을 크게 터뜨린 것!
 
이 유니버스 대회는 미스 코리아 대회와는 달리 사회자가 우승자부터 발표하는 게 아니라 2위부터 발표하는 방식인데(그러니까 올 해의 준미스는 한국입니다, 그리고 영예의 미스 유니버스는 태국입니다 이런 식으로) 긴장된 와중에 코리아가 먼저 터져 나왔으니 자신이 된 걸로 오해할 수 밖에.

아무튼 장씨는 대회기간 동안 두 번 울 수 밖에 없었으니 한 번은 민속의상상 놓쳐서 다른 한 번은 준미스로 2등을 차지해서.

우리나라가 원래 그렇지 않나?
은메달 따고도 서러워서 탈락자들보다도 더 울고 미스 코리아 선 하고도 펑펑 울고(역대 진들보다 선이 더 많이 우는 이유를 한 선 당선자가 이렇게 얘기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갔다가 결정적 순간 카메라가 진을 잡고 포커스가 거기로만 가 버리면 실망감과 아쉬움 그리고 허탈함에 안 우려고 해도 울음이 터져 버리게 된다고... 그래서 미나 다른 타이틀보다 유독 선들이 그렇게 무대 뒤에서 많이 운다고 했음).


아무튼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어린 소녀의 몸으로 약소국의 어려움을 이겨낸 채 국위선양하고 지원도 안 받은 상태에서 홀로 고군분투해 성공을 일구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윤정은 어쩌면 우승한 미스 태국보다 더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아무튼 참 아름답고 뿌듯했던 그 때 그 시절 일화들!
어쨌건 아직도 현실은 이렇다는 것인데 이 장윤정씨 뿐만이 아니라 다른 미스 코리아들도 국제대회에 나가서 그리고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나간 무슨 운동선수들이나 기술자들 중에서도 은근히 차별과 무시를 당하는 일이 아직은 적지 않은 게 현실인데 이런 이들이 존재하기에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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